그리스 아테네는 서양에서 처음 민주주의가 꽃 핀 곳이다. 이곳은 또 서양 철학의 본산이며 서구 문학의 원류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 사실은 서로 관련성이 있을까 없을까. 정답은 ‘있다’다.
서로 달라 보이는 이 세 가지 분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말’이 필수적인 도구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토론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고 다수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사와 논리가 필요하다. 출세를 원하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지금 아이비리그 대학 등록금에 못지 않는 큰돈을 싸들고 스승을 찾아가 이 기술을 배웠다. 이를 가르친 사람들이 바로 소피스트였다.
수사와 논리는 문학과 철학을 위한 기초적인 작업이다.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한 명인 플라톤은 원래 시인 지망생이었다. 소크라테스를 만나 관심이 철학 쪽으로 옮겨졌음에도 그는 문학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쓴 사람의 하나다. 그는 또 실패는 했지만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 옮기고자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가 아니더라도 데모스테네스 이래 웅변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깊다. 가장 뛰어난 미국 대통령의 하나인 링컨은 웅변가이자 명문가였고 가장 위대한 영국 정치인의 하나인 처칠 또한 그랬다. 반면 폭력과 독재가 판치는 곳에서는 웅변과 명문이 나오지 못한다. 근대 유럽에서 가장 의회 민주주의가 발달한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문호를 가장 많이 배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에서 미디어법이 온갖 소동 끝에 통과됐다. 야당에서는 여당이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했고 대리 투표를 했다며 무효를 주장하고 있고 여당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부정행위를 저지른 여당의원들을 공무집행 방해죄로 잡아넣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소동의 발단은 소수인 야당의원들이 회의조차 하지 못하게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 회의장을 막았기 때문이다. 국회를 열어 법을 만들라고 국민의 대표를 뽑은 것인데 표결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 공무 집행 방해 같은데 알 수 없는 일이다.
좌파들 주장에 따르면 방송 채널을 늘려 국민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좌편향 위주의 방송 시장에 다양한 의견이 나오면 좌파 주장이 희석되고 이는 곧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다. ‘노예제’가 ‘자유’고 ‘전쟁’이 ‘평화’인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연상케 한다.
아무튼 이번 일로 뜬 사람이 있다. 한나라당의 김성회 의원이다. 육사 럭비 선수 출신인 김의원은 민주당이 쇠사슬로 봉쇄했던 국회 본회의장 출입문을 뜯어내는가 하면 의장석을 점거하기 위해 몰려드는 4~5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혼자 힘으로 간단히 물리쳤다. 한국 국회에서 유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를 이보다 분명히 보여줄 수는 없다.
미국에서는 어째서 표결을 둘러싼 몸싸움이 벌어지지 않는 것일까. 미국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의회 본회의장을 막고 나선 의원들은 모두 공무 집행 방해죄로 체포될 것이고 다음 번 선거에서 낙선이 보장된다고 봐도 된다. 의원의 본분을 망각한 사람이라는 지탄과 함께.
한국이 민주주의를 시작한지도 이제 60년이 넘는다. 그러나 국민과 정치인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국회에서는 처칠보다는 김성회 의원 같은 인물이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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