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빨리 나가세요!”
보슬보슬 비가 오던 크리스마스 전날 아침 집 근처의 미국식당에서 우리 가족이 아침을 먹던 중에 들린 소리였다. 아내와 나는 가르치는 학교의 겨울방학을 맞아 한가롭게 늦잠을 잔 후 아기와 함께 아침을 먹으러 나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앉아 있던 자리 뒤에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얼음물 한 잔을 앞에 두고 머리를 숙인 채 앉아있었다.
식당 매니저는 친절한 척하며 “May I help you?”라고 인사를 한 후 뭐라고 조용히 얘기를 나누더니 묵직한 소리로 그 식당을 나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잠시 매니저를 쳐다본 후 가방과 모자를 가지고 조용히 걸어 나갔다.
여전히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길거리로 천천히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우리는 바라보았다.
홈리스 할아버지였던 것 같았다. 추운 날씨와 비를 피해 식당에 들어 왔지만 음식을 주문하지 않으면 나가야 한다는 매니저의 말을 들어야 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조용하게 나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뛰어가서 우리와 합석하자고 할까도 생각해보았다. 아니면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내 지갑에 있던 돈 20달러를 드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혹은 우리와 함께 앉은 후 이상하게 행동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돈을 주면 그 돈을 가지고 술이나 마약을 사 먹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는 동안 그 할아버지의 모습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 할아버지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더 안타까웠던 이유는 바로 며칠 전 교회에서 들은 설교가 우리의 소유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핵심이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나는 더욱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며칠도 가지 않아 그 결심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눈앞에 두고 도와 줄 용기가 없었음에 창피했다. 집에 오는 길에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도와 주자고 약속을 했다.
점점 경제가 나빠지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더 많아 질 것이다. 직장과 집을 잃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TV와 라디오에서 들리는 경제 전망은 점점 더 어둡다.
쇼핑몰에서 장사를 하는 친지도 장사가 되지 않아 울상이다. 매달 만달러씩 돈을 잃어가며 가게를 운영하는 형편이어서 이번 연말만 버텨보고 매상이 오르지 않으면 가게 문을 닫겠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고는 지금 같은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올해가 다 가고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 새해결심을 할 때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한 결심을 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더 향상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결심을 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이제 나는 배고픈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는 것이 새해결심 중 하나이다.
서재필
벨플라워 중학교 합창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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