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가 역사적 차원에서 봤을 때 과연 이를 이루는 것이 최선의 결말인지는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인류가 이룩한 최고의 정신적 업적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과 고통 속에서 태어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로마 말기 철학자 중 보에티우스라는 사람이 있다. 조상 중에 로마 황제가 여럿 있는 명문가 출신인 그는 한 때 최고위 공직인 집정관 자리에 올랐으며 두 명의 자식도 그 뒤를 이어받았다. 이런 명문 세도가가 황제의 미움을 사 하루아침에 반역자로 몰려 옥에 갇혔으며 1년 간 옥살이를 하다 참혹하게 처형됐다.
옥에서 그가 쓴 ‘철학의 위안’은 중세 1,000년 동안 장기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며 단테에서, 초서, 밀튼,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책에서 운이 지배하는 인간의 삶은 변덕스러운 것이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부와 권세는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며 진정한 가치는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내적인 덕이라고 적었다.
단테는 한 때 권력의 정점에 있다 쫓겨나 20여년 간 방랑 생활을 하며 ‘신곡’을 썼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은 이 때 단테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크롬웰의 비서였던 밀튼은 크롬웰이 죽고 그가 처형한 찰스 1세의 아들이 왕이 되어 돌아오자 목이 달아날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눈이 안보여 목숨만은 건졌지만 권력을 잃고 장님이 된 그의 삶은 비참했다. 그 고통 속에서 나온 것이 ‘실락원’이다.
감옥 속에서, 혹은 유배 생활을 하며 위대한 작품을 남긴 것은 문인들만이 아니다. 근대 정치학의 창시자의 하나인 마키아벨리는 옥에서 고문당하고 죽다 살아 나온 뒤 은둔 생활을 하며 ‘군주론’을 집필했고 유럽인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촉발시킨 ‘동방견문록’도 마르코 폴로가 전투에 나갔다 포로로 잡혀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구술해 책으로 나온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본인 희망대로 출세를 해 권좌에 앉았더라면, 장사꾼 마르코 폴로가 큰돈을 벌었더라면 두 책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서양에서 러시아만큼 문인들이 큰 고통을 받은 나라도 드물다. 러시아 문호 가운데 톨스토이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도스토옙스키는 반란죄로 체포돼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1848년 처형 직전 감형돼 시베리아 유형소 생활을 했다. 그는 그 때 생활을 “바닥은 모두 썩고 오물이 1인치 두께로 덮여 있었다. 벼룩과 이, 풍뎅이는 도처에 널려 있고...”라고 묘사한바 있다.
지난 100년 동안 러시아의 유배지 풍경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한 작가가 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이다. 제2차 대전 때 나치와 싸우며 2번이나 무공 훈장을 받았던 그는 친구와의 편지에서 스탈린은 “수염 난 사람”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시베리아에서 8년간이나 유형 생활을 해야 했다. 스탈린 사후 해빙 무드를 타고 그가 이 때 체험을 바탕으로 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1962년 발간되면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러나 흐루시초프가 실각하고 브레즈네프가 집권하면서 그에 대한 탄압은 심해지며 강제 수용소 실태를 고발한 ‘수용소 군도’가 나오자 노벨상을 받았음에도 1974년 추방돼 미국 버몬트 주에서 18년이나 은둔 생활을 한다. 그의 책은 세계인들에게 소련과 스탈린 체제의 실상을 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악명 높은 시베리아 유형소는 고르바초프에 의해 결국 철폐되기에 이른다. 1994년 영웅적 환대를 받으며 귀국했던 그가 지난 주말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러시아 국수주의자, 반유대주의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비판자라는 비난에도 불구,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진실을 밝혀 결국 강제 수용소를 문 닫게 만든 그의 공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지구상에 유일하게 강제 수용소가 남아 있는 북한 땅에도 한국판 솔제니친이 하루속히 나오기를 기대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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