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민의 나라다. 1607년 첫 영구적 식민지인 제임스타운이 생긴 이래 지난 400년간 이민자가 미국 땅에 발을 디디지 않은 해는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 건국 이후 오랫동안 이들을 신천지로 끌어들인 가장 큰 요인은 남아도는 땅이었다. 원주민인 인디언을 몰아내고 얻은 것이기는 했지만 사람은 많고 땅이 없는 유럽과는 대조적으로 사람은 적고 땅이 넓은 미국은 가난한 유럽의 하층민에게는 ‘꿈의 대륙’이었다.
미국 정부는 황무지에 말뚝을 박고 개간한 사람에게는 160에이커의 땅을 주는 ‘홈스테드 법’을 제정, 이주민의 정착을 도왔다. 19세기 중반부터 100년 동안 시행된 이 법으로 160만 명이 생활의 터전과 ‘마이 홈’의 꿈을 이뤘다. 미국 전체 면적의 10%인 2억7,000만 에이커가 이렇게 경작됐다.
미국은 또 ‘세이빙스&론’(S&L) 제도를 통해 일반 국민들의 주택 구입을 도왔다. 19세기 초부터 생긴 이 제도는 지역 주민의 예금을 모아 주택 구입 희망자에게 모기지 융자를 해 주는 것으로 중산층도 내 집을 갖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인플레가 기승을 부리자 장기 저리 모기지를 주 수입원으로 해왔던 S&L은 경영난에 빠졌다. 그 타개책으로 정부는 은행에 비해 감독이 약한 S&L에게도 은행과 같은 수준의 다양한 융자를 허용해줬다.
그러자 S&L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고수익을 노려 위험성이 큰 부동산 융자에 뛰어들었고 부동산 경기 침체가 불어 닥치자 연쇄 도산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와 90년대의 S&L 위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연방 정부는 급기야 정산공사(RTC)를 설립, 애물단지로 변한 차압매물을 헐값에 팔아 문제를 해결했다. 이 때 문 닫은 S&L수가 700여개, 총 손실액이 1,600억 달러에 달했다.
S&L 위기의 원인은 고수익을 노려 투자했다 손실을 입으면 결국에 가서 정부 책임이고 이익이 나면 S&L이 챙기는 위험 부담과 수익의 불일치에 있었다. 지금 똑같은 이유로 그 때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금융 위기가 미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미 국채의 절반 규모인 5조 달러의 모기지를 직접 소유하고 있거나 보장하고 있는 모기지 업계의 두 거인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이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연방 전국 모기지 연합’의 약칭인 패니와 ‘연방 주택 모기지 공사’의 약칭인 프레디는 일반 미국인 주택 소유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각각 1930년대와 1970년대 세워졌다. 이 두 기관은 묵시적으로 정부 보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에 여기서 내준 모기기지와 보증은 정부 보증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져 왔으며 따라서 일반 모기지 회사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붕괴하면서 패니와 프레디가 갖고 있던 자산 가치도 폭락하기 시작했으며 아울러 이들 주식도 1년 사이 80%이상 추락했다.
과연 모기지 업계의 두 거인이 도산하는 것이 가능할까. 대답은 아니다다. 미 모기지 시장의 기둥인 이들 업체가 망할 경우 그 여파가 너무도 크기 때문에 연방 정부가 이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구제 과정에서 납세자들이 얼마나 큰 손실을 부담해야 하느냐이다. 정부가 지금까지 묵시적이던 지불 보증을 명시하면 투자가들을 안심시킬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연방 정부 채무가 졸지에 5조 달러 더 늘어난다.
아니면 정부 돈으로 증자해 두 회사 재정을 튼튼히 하는 것인데 정부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패니와 프레디 사태의 교훈은 S&L과 같이 위험 부담과 수익을 분리시킬 때 사고의 위험은 항상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위기를 일단 벗어난 후에는 정부 감독 하에 부실 모기지를 정리하고 두 기관을 완전 민영화해 정부가 깨끗이 손을 떼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인 것 같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