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예측할 수 있는가. 물론 예측 가능한 역사도 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미국은 여전히 세계 제일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닌 수퍼 파워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0년 후에도 과연 그렇겠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길게 보면 중대한 역사적 흐름은 모두 예기치 못한 것들이다. 역사는 인과율의 지배를 받는 물질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 문명의 원천인 로마만 해도 그렇다. 티베르 강가의 작은 부족이 이탈리아 반도를 모두 통일하고 숙적 카르타고를 물리친 후 지중해를 호수로 하는 대제국을 건설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또 그토록 크고 강한 제국이 게르만족의 침공에 그렇게 맥없이 무너지리라고 상상한 사람도 없었으리라. 불후의 대작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은 무너져 내린 로마 유적에 둘러싸여 “로마가 망할 수 있다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적었다.
로마를 능가하는 대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만 해도 그렇다. 어려서 아버지를 적들의 손에 잃고 자기 부족에조차 버림받은 광야의 떠돌이 테무진이 나중에 몽골부족을 통합하고 중앙 아시아는 물론 중국에서 러시아, 헝가리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 국가의 시조가 되리라고는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대서양 변방의 조그만 섬나라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세계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한 일이나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영국군에 맞서 대서양 연안의 자그마한 13개 식민지 연합군이 일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독립을 쟁취한 일 모두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거창한 사건들 말고 최근 미국 역사를 보더라도 역사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 경우는 많다. 그중 하나가 중화 인민 공화국 건국 이래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온 미국과 중국의 관계 정상화다. 이 일이 미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열렬한 반공주의자이던 리처드 닉슨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은 역사 예측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일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은 닉슨뿐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 공산주의와 사투를 벌이던 당시 상황으로 봐 공산주의 유화론자가 이런 정책을 폈다면 당장 용공주의자란 비난을 뒤집어쓰고 쫓겨났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공화당 우파의 의제이던 북미 자유무역협정과 웰페어 개혁이 클린턴 행정부 때 이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클린턴이 보수적인 공화당원이었다면 리버럴 민주당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둘 다 좌초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민주당원이었기에 미국 경제를 발전시키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설득이 먹혔던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주 북한을 테러 지원국 리스트에서 삭제하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6년 전 국정 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당장이라도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릴 것 같은 호기를 부렸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결과다.
부시 행정부에서 유엔 대사 대리를 지낸 존 볼튼은 이를 두고 “부시 행정부의 지적 파탄”이라며 맹비난 하고 있다. 북한은 6자 회담에서 모든 핵 관련 자료를 내놓기로 했는데 이번 신고서에는 플루토늄에 관한 것만 들어 있고 핵무기를 얼마나 생산했는지, 우라늄 생산은 얼마나 했는지, 시리아 등 타국에 핵 기술을 이전했는지 등은 모두 빠져 있는데도 테러 지원국과 적성 교역국 법 적용에서 북한을 빼 준 것은 일방적인 굴복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들 법 이외에도 아직 북한을 제재하는 수많은 장치가 있고 미 북한간 관계 개선은 숱한 검증을 거쳐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시간이 가봐야 알겠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180도 바뀐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부시의 이번 선언은 역사 흐름 점치기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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