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값은 항상 올라가기만 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알던 시절이 있었다. 70년대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경험한 후 자원 고갈론은 세계인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졌고 기름뿐만 아니라 모든 원자재 값은 한없이 오를 것처럼 보였다. 인구는 급증하는데 자원은 제한돼 있다는 것이 논리였다. 이와 함께 금값은 온스 당 800달러를, 기름 값은 배럴당 40달러를 넘어섰다. 80년대 초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우선 금값이 온스 당 300달러대로 폭락했다. 그리고 80년대 중반에는 기름 값이 배럴 당 15달러대로 추락하며 뒤를 이었다. 모든 원자재 가격이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면서 두 자리 수 인플레는 옛날이야기가 되고 미국 경제는 20년 이상 2~3%의 저 인플레를 경험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1차적으로는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의 고금리 정책을 들 수 있다. 돈 값이 비싸지면서 돈을 빌려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 것이다. 또 고유가가 오래 계속되자 연비가 높은 자동차를 비롯 에너지 절약형 상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그 때까지 경제성이 없던 해저 유전을 비롯 새로운 공급원이 속속 나타났다. 이런 요소들이 상승 효과를 나타내면서 수요는 줄고 공급이 늘자 언제까지나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몰렸던 가수요가 사라지면서 기름 값은 20년 가까이 맥을 추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저유가 시대가 오래 계속되자 사람들의 기름 씀씀이는 다시 헤퍼졌다. 갤런 당 10마일도 채 못 가는 대형 SUV의 판매가 급신장하고 출퇴근 거리가 수십 마일 되는 곳에 집을 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됐다.
거기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만년 극빈자 생활을 하던 중국, 러시아 등 구 공산권과 역시 준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펴온 인도와 러시아가 시장 경제 체제에 들어오면서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생활이 넉넉해진 이들 수십 억 인구가 너도나도 자동차를 사면서 기름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선진국에서 환경 보호 단체의 입김이 세지면서 석유 개발은 극도의 제한을 받게 됐다. 북극권 유역에 수십 억 배럴의 석유가 묻혀있지만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난 수년 사이 오름세를 보이던 유가가 이제는 폭등세로 돌아서고 있다. 지난 6일에는 하루 등락 사상 최고 폭인 배럴 당 10달러가 치솟기도 했다. 이와 함께 과연 기름 값이 거품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거품 부정론자들은 위에서 말한 여러 요인으로 유가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유가 동향을 보면 이런 수요 공급의 원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작년 배럴 당 70달러 선에서 지금 13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는데 불과 1년 사이 수요가 2배로 늘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중 상당 부분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갈 곳 없는 투기 자본의 유입 결과라 봐야 한다. 3년전 160억 달러에 불과했던 석유 투자 펀드 규모는 지금 2,700억 달러로 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보장관인 이야드 마다니는 “현재가격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모든 버블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90년대 인터넷 버블 때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이용자수가, 2000년대 부동산 버블 때는 계속 증가하는 이민자수가 하이텍 주식과 집값 폭등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인용됐다. 맞는 부분도 있지만 이를 핑계로 몰려든 투기 바람이 사실은 진짜 이유였다.
기름 값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까. 배럴당 150~200달러 설이 나오고 있지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버블은 항상 더 부풀 수 있으며 언제 터질지를 점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투자 열기가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폭등세가 오래 가면 갈수록 끝이 가까 이 오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이미 겪은 하이텍과 주택 버블이 주는 교훈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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