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전에 애기아빠가 되었다. 아내가 귀엽고 건강한 딸을 낳은 것이다. 병원 분만실에서 아내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 간호원과 함께 열심히 하나, 둘, 셋… 열까지 세어가며 아내에게 “푸시!”하라고 소리치며 격려했다. 척추마취를 했지만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프다고 불평하던 아내는 어느새 얼굴이 파랗게 변할 정도로 힘을 주었다. 아내를 안지 3년이 되어 가지만 이렇게 힘주는 건 처음 본다.
며칠 전 대학교 동창들을 만났는데 얼굴을 보자마자 “야! 너도 이제 아저씨 같이 보인다!” 라며 웃어댔다. 1년 전 아내와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애기아빠 친구들을 “아저씨!” 라고 부르면서 놀리던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왠지 부부에게 애기가 생기고 나면 남편들은 이상하게 자동적으로 아저씨 같이 보이는 게 참 재미있었던 것이다.
이젠 이해가 간다. 잠을 제대로 못자는 것은 물론 이제는 혼자만을 위해 살수 없다는 부쩍 늘어난 책임감 때문인 것 같다.
3년전 아내를 만나기 전 총각시절에 나는 걱정과 겁이 없이 살았다. 청명한 날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프리웨이를 쌩쌩 달리고, 스포츠카를 몰며 밤늦게 돌아다니기도 했다. 마음껏 음악회나 오페라를 찾아 다녔고, 페이먼트만 내고나면 남은 돈으로 맘에 드는 옷, 신발, 넥타이, 선글래스 등 뭐든 부담 없이 사고, 삐쭉삐쭉 뻗치는 헤어스타일에서 부터 파마머리까지 온갖 멋을 냈었다. 스카이다이빙까지 했으니 하고 싶은 건 다 해본 것 같다.
애기아빠가 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젠 오토바이 대신 아내가 타던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를 탄다. 옛날의 스포츠카에 비하면 거북이를 타고 다니는 기분이다. 그 차를 팔고 이제 미니밴을 사려고 생각하니 조금 서럽기도 하다.
운전하는 속도도 많이 줄이고, 잘 매지 않던 안전벨트도 꼭 매고 다닌다. 애기와 함께 심포니나 오페라를 보러 가는 건 한동안 당연히 불가능하며, 이젠 샤핑을 가도 내가 입을 옷보다 애기 입을 옷, 또는 애기를 위해 쓸 물건들만 눈에 들어온다. 내 헤어스타일을 신경 쓰기는커녕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기도 힘들다.
라이프스타일이 180도 바뀐 것이 딸을 위한 나의 희생이라면, 아내는 우리 아기에게 바쳐진 산 제물이나 마찬가지다(꼭 킹콩에게 바쳐진 금발의 아가씨처럼…). 두세 시간 마다 젖 먹이는 것 만으로도 하루가 다 간다. 게다가 젖몸살에 걸려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마다 너무 통증이 심해 발가락들이 꼬이는 걸 본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가고 싶은 곳에도 못가니 감옥이 따로 없다. 아니, 화장실도 맘대로 못가니 감옥에 갇혀있는 것 보다 더 힘든 것이 아닐까?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정말로 할수 없는 일이다.
지난 3주동안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이 아이가 크면 어떤 사람이 될까? 공부는 잘할까? 어떤 남자와 사귀며 결혼을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지만 제일 많이 떠오르는 것은 나의 부모님이었다.
60년대, 70년대에 우리 5남매를 낳으시고 키우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한국에서부터 우리를 좋은 학교에 보내시려고 얼마나 애쓰셨을까. 우리에게 더 좋은 삶을 주기 위해서 미국으로 이민와 고생하신 걸 생각하면 나도 부모님같이 내 딸을 위해 희생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늘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같이 절실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마침내 내가 철이 드나보다. 애리조나에 계시는 부모님들께 감사하다고 전화를 드려야겠다.
서재필
벨플라워 중학교 합창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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