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벨(美, 39)의 연주는 표정이 분명하다. 귀에 분명히 전달되는 소리는 연주라기 보다는 특출한 음감으로 만들어내는 소리의 ‘재창조’, 자신만의 신화이다. 현존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중에서 조슈아 벨만큼 분명하고 중후한 톤으로 자신의 소리를 만들고 있는 연주인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연주력이 꼭 연주회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연주력 플러스, 청중동원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 조슈아 벨은 우선 첫 두 조건은 갖춘 연주인이다.
벨은 영화 ‘레드 바이올린’의 배경음악(아카데미상 수상) 연주 후 갑자기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가는 곳마다 청중이 몰리고 있다. 벨이 연주하는 전설적인 악기 1713년 산 레드 바이올린(스트라디바리우스)도 인기에 한 몫하고 있다. 벨의 문제는 아마도 청중과의 호흡, 연주회에서의 흡인력일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도 감명이 없다면 이는 2%가 부족한 연주일 뿐이다. 벨은 분명 명악기가 뿜어내는 명연주의 대명사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감동의 측면에선 의견이 엇갈릴 수 밖에 없다. 가량을 겨루는 대회라면 모를까 청중이 연주회에서 기대하는 것은 연주인의 마음이다. 전설적인 지휘자 첼리비다케가 그토록 음반을 거부하고 생음악만을 주장했던 것은 현장음악만이 연주인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혼이 없는 음악은 그만큼 죽은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음반은 별로인데 연주회가 늘 성공적인 연주인이 있는 반면, 특출한 음반을 남기고도 연주회는 늘 혹평을 면치 못하는 연주인들이 있다.
벨의 연주에 감명 받은 것은 언젠가 FM에서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을 들었을 때 였다. 당시 벨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벨이라는 존재도 명확히 몰랐을 때였다. 벨은 시벨리우스 연주에서 이제껏 들어볼 수 없었던, 신비감 넘치는 지상최고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 힘이 벨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는 것은 11일에 열린 벨의 리사이틀에서 알 수 있었다. 왜 연주인들이 그토록 명기를 열망하는 것일까? 이는 명연주가 명악기에서 비롯된다는 불변의 진리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벨은 분명 좋은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특출한 재능, 자신에 알맞는 악기를 갖춘 연주인이었다. 벨은 이날 데이비스 심포니 홀을 가득 메운 청중들앞에서 베토벤의 ‘소나타 5번(봄)’을 첫 곡으로 들고 나왔으며 이어 생상스의 소나타 1번, 프로코피에프의 ‘멜로디 5곡’등을 들려 주었다. 벨의 연주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처럼 잘 알려진 곡을 이처럼 다르게 연주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새로 태어난 ‘봄’을 다시 듣는 기분이었는데 생상스에서도 벨은 소문으로 듣던 탁월한 기량을 자유자재로 발휘했다. 이어 기립박수가 터졌고, 함성이 일었다. 외형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다소 실망이 있다면 연주회가 너무 상업적이었다고할까, 튀는 연주이긴 하였으나 내면적인 교감이 부족한 연주회였다. 열정이나 몰입보다는 상투적이었고, 녹음에서와 같은 환상적인 소리는 없었다. 이날의 연주는 다소 새미 클래식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을 장점으로 본다면 벨은 그 어떤 장르에도 통할 수 있는 연주인이라는 점일 것이다. 클래식은 물론 팝이나 재즈를 막논하고 당분간 바이올린계에서의 조슈아 열풍은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중의 지명도 만큼은 벨이 현존하는 최고 바이올리니스트 중의 한 명이다.
벨은 1967년 인디애나에서 태어나 4살때 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12살때 무띠(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 신동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85년부터 데카에서 많은 음반을 출시했고 96년 소니로 옮겨 ‘레드 바이올린’으로 아카데미상 수상, 2002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로 그래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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