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들만 셋을 두고 있다. 얼마 있으면 큰아들이 결혼을 하게되니 자동적으로 시어머니 대열에 서게되었다. 한국 TV 드라마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무릎 꿇는 장면도 보았다. 이런 시대인가하고 생각하니 시어머니 되기가 겁이 나기도 한다. 고부간에 정말 갈등은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우선 만나는 시어머니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비슷한 이야기들이다. 아들이 결혼하면 며느리뿐만 아니라 아들에게도 아무 기대하지 말라는 비관적인 대답이다. 오죽하면 아들만 있다는 어느 할머니는 60을 바라보는 나에게 지금이라도 딸을 낳으라고 하시랴.
아들이 고교시절, 나는 남자와 여자는 인권은 같지만 각자의 역할은 다르며 여자는 돕는 배필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지금까지는 아들들과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아들뿐만이 아니고 며느리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결혼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며느리를 맞이하는 마음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며느리를 딸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리 서로 잘해주어도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딸 같지는 않다고 하고 며느리들도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 같지 않다고 한다. 같을 수가 없다. 만약 딸이 낮 12시까지 침대에 누워있으면 좀 더 자라고 가서 이불을 덮어주겠지만 며느리가 그렇다면? 며느리가 부엌 싱크대에 설거지거리를 쌓아두고 외출을 한다면 고운 눈으로 보아질까? 딸이라면 대신 설거지를 해 주겠지. 며느리를 딸같이 생각하기까지는 나 자신의 훈련이 필요하겠구나하는 생각이다.
“며느리가 아니고 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생각은 아들이 아직 결혼 전인 지금도 장래 며느리를 만날 때마다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며느리를 딸로 생각하는 훈련으로 나를 세뇌시키고 있다.
둘째, 세 며느리들을 편애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나는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굳게 지켜오고 있는 원칙이 있다. 편애하지 않는 것이다. 세 명에게 공평,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부모의 편애는 형제사이에 불화를 야기시킨다. 성경에 아버지 이삭은 형 에서를, 어머니 리브가는 동생 야곱을 편애한다. 그 결과 두 형제는 20년동안 떨어져 살다가 상봉하는 감격적인 장면이 있다. 어머니 리브가가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셋째, 며느리들의 우애를 돈독하게 하는 일도 시어머니의 몫이다. 가정, 학력, 성격, 환경이 다른 곳에서 성장한 현대 여성들이 나의 아들들을 사랑해서 결혼함으로 법으로 (in-law) 형님 아우사이가 된다. 서로가 어려운 관계일 수도 있다. 동서들간에도 한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진정한 믿음과 사랑을 나누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어머니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좋은 시어머니가 되기 위하여 시어머니 학교라도 있으면 등록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현/ 알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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