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하는데, 그럼 사람이 죽은 장소는 뭐라고 합니까?”
나는 사할린 동포들을 대할 때마다 지난 14년 전 사할린 땅을 처음 방문했을 때 동포 노인이 지나가는 말처럼 던졌던 이 질문을 기억하게된다.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되었다가 2차대전이 종전되면서 사할린이라는 섬, 낯선 이국 땅에 버려졌던 5만여 명의 한인 동포들. 고향이 그리워서 생전에 고국 땅을 밟아 보는 것이 그들의 평생의 소원이었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차갑게 죽어갔다.
“사할린에서는 노인들이 죽으면 보통 화장을 합니다. 그리곤 바닷가에 재를 뿌리는 것이 일반 장례 절차인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바닷가에 재를 뿌려놓고 보면 영락없이 그 재가 바다 물결을 거슬러 한국 땅이 있는 방향으로 떠내려갑니다. 죽어서 재가 되서라도 모국 땅에 한번 가고 싶어하는 뼈 속까지 사무친 소원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나는 칠순의 할아버지가 눈시울을 적시며 들려주었던 사할린 동포 노인들의 장례식 이야기를 들으면서 온 몸에 닭살이 돋았었다. 도무지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한”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소원을 완전히 포기 할 수 없었다면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 땅 사할린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고향은 또 다른 “이데올로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려서 사할린 동포들이 합법적으로 한국에 귀환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시절이 왔다.
지난 5년 전부터 한국 정부는 안산인근에 사할린 동포 정착촌을 건립하고 나이 드신 분들부터 우선적으로 조국에 돌아와 살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그래서 지난 5년 동안 약 1,000 여명의 사할린 동포들이 안산 정착촌으로 이주해 꿈에도 그리던 조국 땅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죽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귀향의 소원이 정말 꿈과 같이 실현된 것이다.
이번 주 미국을 방문한 20여명의 사할린 동포 노인들은 이미 사할린을 떠나 안산 정착촌으로 이주한 운좋은(?) 분들이다. 사할린에서 반세기를 무국적자로 온갖 차별대우를 받으며 천덕꾸러기처럼 서럽게 살아왔었는데 이제 70을 넘긴 나이에나마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분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한국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았을 때가 가장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미국에 와 보니까 여기는 정말 천국 같습니다. 미국 동포들은 또 다들 건강하고 아주 보기가 좋습니다.”
오랜만에 사할린 동포 노인들을 대하면서 “인생은 결코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백승환
목사·구 소련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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