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에는 이런 자들이 유공자들이다. 미국 여류작가 소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 1905~1938)과 일제시대 조선공산당 책임 비서로 활동했던 김철수(1893~1986) 등 사회주의 계열들에게 서훈이 추서됐다. 또 ‘빈처’의 작가 현진건(1900~1943)에게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다.
국가보훈처는 8.15 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 사회주의 계열 47명을 포함하였다. 또한 국가보훈처는 3.1절 날에도 여운형, 권오설 등 사회주의 계열 54명에게 서훈을 추서했다. 모두가 친북 사람들이다.
‘김산’의 경우, 1924년 고려 공산당 베이징 지부를 36년 조선 민족해방운동을 결성하는 등 중국 각 지역에서 투쟁을 전개한 사람이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현진건, 김태연, 이와 같은 사람에게 보훈처는 심사를 거쳐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친북인사로 분류돼 입국이 금지되어 온 기독교 통일운동의 대부 이영빈(79) 목사가 한국에 왔다. 이영빈은 광복 60돌을 맞아 서울에서 민간차원의 남북교류행사인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고국 땅을 찾았다.
그의 방한은 1955년 10월 독일 교회의 초청으로 유학길에 오른 지 반세기만이다. 그는 1960~1970년 독일 한인교회 내에서 반독재, 반유신 운동에 앞장서면서 1979년 본 주재 한국 대사관 점거 농성에 참가했으며 1980년에는 광주 민주운동을 계기로 통일운동가로 변신했다.
이 목사는 80년 말 유신이 무너졌어도 한국에 군부 독재정권이 다시 들어선 것을 민족분단 상황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 해외 한인신학자들을 규합해 ‘조국통일 해외기독자회(기통)’를 결성했다.
이듬해 6월 대표 자격으로 종교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 북한 조선기독연맹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관계자들과 만났다.
그의 방북은 같은 해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남북 기독교계 인사들이 분단 이후 처음 한 테이블에 앉은 제 1차 유럽통일대화로 이어졌다. 이후 고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방북을 결행한 데는 실향민이라는 성장배경에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목사는 지난 91년~94년 두 차례 부인 김순환(77)씨와 함께 입국을 시도했으나 김포공항에서 당시 안기부에 의해 강제 출국 당했다.
요즈음에는 강정구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을 들쑤시는데 정부는 오히려 그를 옹호하고 있다. 6.25 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운 맥아더장군을 원수라고 말하며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고 떠드는 친북세력을 정부는 방관하고 있다. 도대체 참여정부의 장관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한국 정부는 바른 길을 택하여 국민의 원성을 사지 말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펴길 바란다.
피터 성
재미 월남전참전 유공자 전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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