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처음으로 얻은 직업이 남자 간호보조원이었다. 1971년에 뉴욕에 이민 와서 반년 넘게 직장을 구해 맨해튼 직업안내소를 두루 헤매고 다녔었다. 아무 일이나 하겠다는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한국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한 내가 이 곳에서 마땅히 일할 곳을 찾기 힘들었다. 겨우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일하게 된 곳은 양로병원의 노인들을 돌보는 일로 자존심은 조금 상했지만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미국에서 그리고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이 곳에서 미국을 배울 겸 마음을 작정하고 일을 시작했다.
영어도 서툰데다 미국 풍습도 잘 몰라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번 식사 때마다 몸이 불편한 환자들의 식사를 도와주어야 했는데 어떤 분들은 잘 씹거나 삼키지 못하기 때문에 일일이 떠 먹여야 했다. 이분들의 음식은 부드럽게 갈아서 나온다. 감자, 고기는 물론 채소 삶은 것까지도 걸쭉한 죽처럼 나오는데 브로컬리와 당근 간 것을 섞어 놓으면 언뜻 보기에도 뭣과 같아서 도저히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돕고 싶어 한술 한술 도와주었는데 한참을 그러던 나에게 환자가 채소를 눈짓하며 그것을 달라고 한다. 나는 내심 놀랐다. 이런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음식을 좋아할 수가…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고기를 좋아하니까 감자와 고기를 중심으로 드시도록 했던 것이다. 몇 번 신경을 써서 채소들을 골고루 잡수시도록 도와주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도 모르게 감자와 고기에 더 자주 손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1908년 미국서 배를 타고 평양 근교 순안에 온 의사 노설(러셀) 박사는 한국 사람들을 사랑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훌륭한 선교사로 기억되고 있다. 가끔 멀리 떨어진 시골로 왕진을 가기도 했는데 가는 길이 먼 경우에는 노새를 타고 가기도 했고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가면 며칠 밤을 자고 오기도 했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환자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열심히 일하는 이 벽안의 의사에게 사람들은 고마워 맛있는 음식을 대접 하고자 했다. 집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꿀단지나 엿을 가져오기도 했고 옥수수를 쪄오기도 했다. 그리고 맛있는 특별한 밥으로 대접한다며 팥밥을 지어드리고 맛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이 점잖은 의사는 물론 맛있다고 대답했다.
정성을 들여 제일 좋은 것으로 대접하고자 하는 시골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그는 저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맛있다고 대답하는 그는 진심으로 한국 사람들을 사랑하는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그 후로 이 코가 큰 서양사람이 팥밥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져 그가 가는 곳마다 으레 똑같은 팥밥을 지어드렸다. 후일 그가 한 추억담에서 그는 생전 먹지 않던 이 붉은 콩밥이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설사를 하고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을 위하고 좋은 뜻으로 최선을 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도 큰 실례를 범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나 또는 특별히 배려해 주려는 이에게 정성을 다하지만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항상 최선일 수 없을 수도 있고 결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한다면 시간을 투자해 그 사람을 잘 배워야 한다. 상대의 모든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느끼는 대로 감정대로 정성을 다한다 해도 팥밥 사랑과 같아서 자기 중심적인 것이 되기 쉽다.
김평웅 보건학 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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