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함께할 선우(善友)가 되자
SF 여래사 25주년 기념법회 수원스님 설법
1980년 10월27일 새벽,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을 비롯한 한국 3,000여개 사찰에 중무장한 계엄군이 들이닥쳤다. 불공을 드리던 스님들은 영문을 모른 채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고문이 지배하는 생지옥으로 연행됐다. 수많은 스님들이 저항하다 죽임을 당하거나 불구가 되고 승적을 박탈당했다. 이후 몇년동안 한국 사찰들은 기왓장 하나 바꿀 자유조차 없는 수모를 겪었다.
범법자 색출과 불교계 정화라는 미명하에 전두환 신군부가 저지른 10•27 법란(法亂)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여래사가 태어남의 첫 목탁소리를 울린 것은 그 즈음이었다. 그로부터 25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법란의 주역들은 혹은 법의 심판을 받고 혹은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 이제는 군(軍) 과거사 정리라는 새로운 심판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 기막힌 활극에 여나믄 불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합장하고 불심을 지폈던 여래사는 이제 약 100명의 불자들이 선하고 깨끗한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 거룩한 부처님의 뜻에 따르기를 다짐하는 도량으로 자리잡았다.
불교가 본디 구원 등 번뇌에 얽매임 없이 세속의 때를 씻어내고 맑은 세상(정토)으로 나아감을 추구해서일까. 시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10월30일, 여래사 개원 25주년 기념법회에서는 누구 하나 법란의 고통을 뒤적이지 않았다. 오직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다짐과 자기경계의 분위기가 압도했다. 주지 수원 스님의 설법부터 그랬다.
추교학 신도회 부회장의 사회로 삼귀의 찬불가 헌화 축사(신진휴 신도회장)에 이어 헌공을 주재한 스님은 ‘진리를 함께할 선우(착한벗)가 되자’는 주제로 한 설법에서 우리는 세상이 혼탁하고 탁류가 거셀수록 부처님의 자비하신 참모습을 그리워하고 그 정신대로 살고자 더욱 간절한 원력을 세우게 되고, 또한 물질과 마음의 정서가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마음의 교양과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담당해줄 곳을 찾게 될 것이라고 절을 찾는 마음을 헤아리고는 우리 여래사는 부처님 법에 의지하여 오탁악세의 번뇌를 씻어낼 수 있는 의지처가 되어야 하고, 불법과 인연이 있는 이에게는 더욱 깊은 믿음을 전하고,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좋은 불연을 맺는 전법도량으로 거듭나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어 문(절) 밖에 나가면 불자가 아니고 법당 안에 들어오면 불자가 되는 것은 불자가 아니다 (절은) 부처 되는 곳이지 복 비는 곳이 아니다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뒤 부처님과 제자 아난존자의 대화를 통해 착한 벗의 의미를 상기시켰다.
세존이시여, 착한 벗이 있고 착한 동지와 함께 한다면 이 성스러운 길의 절반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아난존자)
아난아 그것은 잘못이다. 착한 벗이 있고 착한 동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이 성스러운 길의 전부이니라.(부처님)
스님은 또 좋은 친구란 그저 술 사주고 같이 놀아주는 친구가 아니라 내 삶을 바르게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면서 도반은 부부간에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부모자식 간에도 될 수 있는 것이며 누가 (나의 도반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도반이, 선지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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