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오페라의 어휘가 주는 느낌은 느끼하다. 여유의 과용이라고나할까, 어쩐지 부르조아적인, 배짱이의 게으름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가 공연중인 노르마와 같은 작품은 이태리 오페라가 왜 수세기를 통해 식을 줄 모르는 사랑을 받고 있는지 꼭 확인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벨칸토 3대 거두 중의 하나로 불리우는 벨리니는 이태리인들이 거의 신격화하여 추앙하고 있는 벨칸토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천재 중의 한 명이다. 마치 건전한 마약 같다고나할까, 거침없이 뿜어내는 그 신선한 선율은 거절할 수 없는 감동으로 영혼을 고매한 안식처로 인도한다.
벨칸토는 극의 성격보다는 아름다운 노래에 중점을 두는 발성법을 말한다. 벨리니를 비롯 롯시니, 도니젯티 등에 의해 (19세기 초엽) 크게 꽃피웠다. 그중 벨리니(伊, 1801-1835)의 경우 노르마, 청교도등을 통하여 탁월한 극적 감각을 과시했는데, 34세로 요절하고 말았다.
벨칸토는 큰형님 롯시니 주도로 당시 베토벤 등이 장악하고 있던 독일 낭만파의 인기를 이태리쪽으로 돌리게하는데 성공했고 세계의 음악사를 독일의 낭만파와 이태리 벨칸토로 양분할 수 있을 만큼 세계음악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벨칸토의 노래들은 시대를 초월한 선율미를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이는 이태리 출신의 작곡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치 정열의 휘파람같다고나할까, 도망자가 외치는 라스팔마스(낙원)의 열망같다고나할까… 하나의 노래가 어쩌면 그렇게 짙은 절망이…, 희망의 역광이 진하고도 아련하게 낭만으로 물결칠 수 있을까.
벨리니의 정결한 여인…, 롯시니의 방금 들린 그대 음성…, 도니젯티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은 거의 대명사라고 할만큼 작곡가들의 성격을 대변하고있는데 그중 도니젯티는 소프라노곡 못지 않게 뛰어난 테너곡들로서 사랑을 얻고있다.
도니젯티의 오페라를 듣고 있으면 마치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2중주를 듣는 느낌이 들곤 한다. 모든 오페라에는 성악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기 마련이지만 유독 도니젯티의 작품에서 2중주를 연상하는 것은 그만큼 성악과 오케스트라 양면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수년전 도니젯티의 라 페보리타라는 작품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는데 별로 알려져 있지도 않은 작품에서 그처럼 탁월한 합창과 오케스트라 선율이 존재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니젯티의 오페라는 모두다 좋다라고 한다면 조금 과장이겠지만 도니젯티의 오페라에서 실망을 느껴보지 못한 것도 또한 드문 체험일 것이다.
도니젯티가 남긴 63편의 오페라 중 루치아, 사랑의 묘약, 돈 파스콸레등을 제외하고는 별로 연주되지 않고 있으나 테너의 활약이 압권인 루치아중에 나오는 끝 장면등은 요즘처럼 석양이 짙게 물들고, 저물어가는 계절에 한번쯤 들어볼만한 비장한 낭만으로 가슴치는 곡이다.
- 오, 조상들의 무덤이여… 이 비참한 영혼을 받아 주소서… 사는 것은 통탄할 절망, 사막일 따름입니다. 오, 몹쓸 루치아여 그대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있을 때 나는 죽음의 팔 안에 있노라…-
루치아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를 떠는 에드가르도, 그러나 루치아가 배신한 것이 아니라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더욱 절망으로 가슴을 치다 자살하고 마는데 이때 부르는 아리아도 유명하다.
도니젯티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루치아는 1835년 나폴리에서 초연, 크게 호평을 받은 후, 계속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도니젯티는 루치아의 성공으로 나폴리 음악학교 부교장의 영예를 차지하는 등 큰 명성을 얻었다.
월터 스코트(Walter Scott 1771~1832)의 소설「람메르무어의 신부」에서 발췌한 것으로 비극적인 내용이지만 노래만큼은 비할바 없이 아름다운 낭만과 이태리적인 낙천성이 가득 차 있다.
엔리코 아스톤 공은 기울어져 가는 가문 바로잡기 위해 그의 누이동생인 루치아를 돈 많은 아르투로의 아내가 되게 하려고 계획한다. 그러나 루치아는 선조 대대로 원수지간인 에드가르도와 이미 사랑하고 있었고 이런 관계를 눈치챈 오빠 엔리코는 에드가르도로부터 오는 사랑의 편지를 중간에서 받아 그 내용을 바꾸어버린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루치아는 마음이 변한 에드가르도를 원망한 나머지 오빠가 강요하는 아르투로에게 마음에도 없는 약혼을 승락하고 만다.
인생의 비극은 무한하지만, 음악은 비극 속에서도 무한한 희망의 날개를 펴고 낙원의 세계로 날아가고 있다. 기러기 떼 날아가는 가을하늘을 보며 도니젯티의 음악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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