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쉐인은 창 밖으로 가을비가 내리고 있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비가 자기 마음을 알아준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스팔트 길이 점점 시커멓게 어두워 오는 것도 꼭 자기 마음 같다고 여겨졌다. 건너편 숲도 자기 마음을 막아 주는 벽처럼 답답하게 여겨졌다. 그는 한숨을 절로 쉬며 텅 비어 가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했다. 적어도 어머님이 자기 등 뒤에 서셔서 살며시 어깨에 손을 얹으실 때까지.
오늘 학교 상담교사가 어머님에게 전화를 걸어 쉐인이 요즈음 수척해 있는 것 같은데, 집에 무슨 근심된 일이 있느냐고 물어오기도 한지라 어머님이 그의 방에 조심스럽게 들른 것이다. 방은 여전히 말끔하고 잘 정돈돼 있었다. 쉐인은 몸을 돌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봤다. 으아 해하는 표정으로.
쉐인은 16세, 11학년이다. 가정학 교수인 한국인 어머니와 은행 중역인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난 독자이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내성적이어서 과외활동은 학교 오케스트라에 마지 못 해 뜸뜸이 참석하곤 했다. 아버지는 수영, 축구, 골프 등을 가르치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비올라를 골랐다. 그리고 개인 레슨 없이 곧잘 켰다. 공부는 적당히 했고 중간 성적을 유지했다. 아버지는 만족해했다.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쉐인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이 게으름 때문이라고 여겼다. 어머니는 소위 일류 고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와서 빠르게 학위와 대학에 교수가 된 것을 머리가 아닌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자녀들이 모두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과 명문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것도 어머니가 쉐인에게 늘 상기시키는 일 중의 하나이다.
쉐인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믿는 어머니가 모르는 사실은 쉐인이 2년 동안 마음에 두고 있는 금발머리 앤에 대한 이야기이다. 쉐인은 상담 교사를 찾아갔지만, 차마 자기가 오랫동안 마음에 사모하는 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말았다.
요즈음 앤이 한두 명 남학생과 각별히 가까운 듯 보이는 것이 쉐인을 더욱 근심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세 클래스를 함께 듣는데도 한번 말도 건네지 못하는 쉐인은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것이었다.
쉐인은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아버지 말대로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진정 소유할 수 없지, 바로 내가 매일 만지는 이 돈도 진실한 의미에서는 내 것이 아니지, 그래도 이 것만은 일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지.”
쉐인은 사바나 스테이크 하우스에 웨이터로 일하기 시작?다. 어머니는 마구 나무랐다. “돈걱정 없을 때 공부에 열중해야지.” 아버지는 적극 찬성이었다. “일찍부터 돈을 사귀는 것은 여자를 사귀는 것보다 백 배나 좋은 일이다”고.
그랬다. 잠시라도 앤을 잊을 수 있어서 마음에 평정이 왔다. 가족 손님들이 쉐인의 서비스를 너무 좋아했다. 어여쁜 자녀들도, 까만 머리에 곱상스런 동양 미국청년을. 그 가족 중에 앤도 있었다. 앤이 상긋 웃고 아주 친근하게 말을 걸어 왔다. “쉐인, 나중에 내가 혼자 와도 서브해줄 수 있어?”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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