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군사기밀을 넘겨주었다는 죄목으로 복역중이던 로버트 김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7년6개월간의 수감생활을 포함해 영어의 몸이 된지 9년8개월만에 자유를 되찾은 그는 “한국 땅을 두 발로 밟아보고 싶다” “여건이 허락하면 영주 귀국하고 싶다”며 조국을 향한 그리움을 절절히 토해냈다.
그가 10년 가까운 간난신고를 겪는 동안 한국에서는 그가 미시민권자라는 이유로 적극 개입을 꺼려온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여론이 일었고, 세간에는 로버트 김 후원회가 생겨나 탄원과 모금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한국의 언론들은 그의 석방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그의 뜨거운 조국애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살아가는 한국계 시민들에게 이 사건은 다소 복잡한 양면성을 띠고 다가온다. 그의 행동이 코리안 아메리칸들, 나아가 미국 내 이민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면 마냥 쌍수를 들어 박수를 칠 일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해군 정보국 문관으로 군사기밀에 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미국 시민권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소에 가둔 미국 정부의 행위를 비난할 수 없게 한다. 혹시라도 이러한 사건이 거듭되다 보면 귀화한 미국 시민들에게는 국가 기밀을 다루는 직책에 제한을 두는 경우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미국 시민권자는 미국법의 보호를 받고 미국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물론 그의 혐의가 단순한 기밀 누설죄인지 간첩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따라서 그의 9년 형량이 과하다는 의견은 가질 수 있지만, 그를 ‘애국 영웅’ 일색으로 묘사하는 한국의 언론들은 이 사건이 지닌 이면을 간과하고 있다.
“가난한 집의 처녀가 부유한 집에 시집을 갔는데 어찌 친정을 도와주고 싶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은 이민 1세대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아무리 도와주고 싶어도 시집 물건을 훔쳐다가 도와줄 수는 없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봐도 미국처럼 이민자들에게 너그러운 나라가 없다. 물론 차별과 어려움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민자들의 권익보호가 이만한 무게를 갖고 사회적 합의로 지켜지고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미국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로버트 김 사건을 냉철한 이성적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수민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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