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온도 차이가 별로 없는 날씨에 눈 한번 오지 않는 샌프란시스코에도 가을이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쾌히 “분명히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가을이 얼마만큼 어떤 식으로 찾아왔는지 보려고 주말 아침 운전대를 잡고는 휘이 도시 안팎을 한바퀴 돈다. 샌프란시스코를 옛것과 새로움으로 밭을 일구어가고, 다양함의 씨를 곳곳에 심으며 우리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엮어 가는 일을 모두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곳곳에 보인다.
헌터즈 포인트 미술가 마을로 향한다. 유해물질로 가득 찬 채 쓸모 없이 내팽개쳐진 전 해군기지 동네를 사람 사는 동네처럼 일구어 놓은 것은 미술인들이다. 다 쓰러져 가는 레스토랑에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보는 베이 지역의 모습이 묘하게 화려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캘리포니아 아트 칼리지와 서던 익스포저 화랑을 들린다. 베이 지역 개념미술시기를 기념하는 작품들을 전시중이다. 작품들이 성큼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에서 순수미술을 시큰둥하게 공부하다가 개념미술과가 생기자 너무 좋아 옳다구나 하고 전공을 바꾸던 생각이 나서 일게다.
개념미술 작가로는 요셉 보이스(독일), 데니스 오펜하임 등의 이름이 우리의 귀에 익다. 20세기 초의 다다 미술가인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에서도 볼 수 있는 개념미술 작품들은 미술가의 재료 조작보다는 미술가의 아이디어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개념미술은 1960년대에 들어 더욱 상업화되어 가던 미술계와 특히 동시대 미술이었던 미니멀리즘의 비인간성으로 대표되는 전후미술의 형식주의에 대한 반대를 기치로 내건 것이었다.
개념미술가들은 그때까지의 미술이 좁은 범위의 개념미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그 한계에서 탈피하게 위해 페미니즘, 대중문화, 기호학 등을 이용해 전통적인 미술작품과 닮은 구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 냈다.
존재가치를 팽개쳐버리는 개념미술의 태도는 당시 미술가, 관람객, 평론가 사이에서 상당히 건강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제는 개념미술 이후 모든 것이 아이디어와 문화경쟁의 세상으로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내가 공부하던 개념미술이 극소수 강대국 주도의 세계화의 도구로 전락해 버림을 보니 속이 쓰리다. 한 시대 흥망의 단면은 문화와 예술에서 볼 수 있다는데 - 이러는 나보고 국수주의자라 하는 측근도 있지만, 글쎄다. 그저 올 가을에 나는 왠지 너무 바빠진다.
백종민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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