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낯선 거리를 걷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낯선 거리에서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스쳐 가는 사람, 낯선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쩐지 몸속 잠재의식 속에선 무언가 애틋한 이야기가 피어오를 것 같곤 한다. 아마도 사람은 다른 세계의… 먼 항성이나 전생에서 존재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 곳에서의 못 다한 이야기를 마치기 위해 다시 태어난 윤회의 존재…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세상의 낯설음에서… 낯선 음악에서 그처럼 아름답고, 애틋한 이야기가 꿈처럼 피어오를 수가 있을까…
꿈속의 자장가처럼… 처음 듣는 음악인데도 담박 깊은 정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음악이 있다. 어떤 거절할 수 없는 감동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이 있는데 아마도 음악의 선험적 힘 때문이겠지만 명료한 춤곡이나 행진곡 풍의 작품들이 주는 선선한 감동은 색다르다.
음악을 처음 듣던 시절, 아마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면 ‘미뉴엣’이나 행진곡 풍의 작품들이었을 것이다. 특히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 같은 작품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음악을 가장 간단 명료하게 해명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 속에는 리듬의 선동, 영혼을 격앙시키는 행진의 예지가 들어있다. 아득하면서도 열정으로 이끄는 시적인 요소… 예술에 대한 희열도 가득하다.
베토벤의 ‘터키 행진곡’도 모차르트 곡 못지 않은 장중한 맛이 일품이고,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 또한 명료한 기품이 넘치는 곡이다. 비제의 ‘미뉴엣’, 하이든이나 베토벤의 미뉴엣(교향곡 상) 등도 음악프로의 시그널 뮤직으로 등장할 만큼 명료한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다.
’미뉴엣’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유쾌해 진다. 동적인 리듬때문일까, 어딘가 활동적인, 춤곡이 주는 서정적 로맨틱 때문이다. 특히 비제의 미뉴엣’(아를의 여인중)등을 듣고 있으면 다분히 소년의 감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이처럼 순박하고 아름다운 곡(플륫)이 또 있을까? 마치 풀피리를 부는 목동처럼… 푸른 들판을 한없이 달려가는 동심에 젖어들게 하곤 한다.
클래식에는 아름다운 ‘미뉴엣’이 수없이 많지만 늘 떠오르는 곡은 3곡이다. 비제의 ‘미뉴엣’ 그리고 베토벤, 모차르트의 ‘미뉴엣’들이다.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아름다운 미뉴엣 소품들을 남겼지만 실상 좋아하는 곡은 교향곡 39번(모차르트), 교향곡 8번(베토벤)에 등장하는 미뉴엣들이다.
’미뉴엣’은 ‘소나타’, ‘교향곡’ 등의 3악장에 사용되는 춤 곡으로 3/4박자로 되어 있다. 경쾌하고 가벼워서 깊은 맛은 없으나 간혹 교향곡에 등장, 명쾌하고 장중한 맛을 선사하는 작품들도 있다. 특히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의 미뉴엣은 가장 널리 알려진 관현악 춤곡으로서, 그 시적이고도 독특한 정서는 꼭 한번 들어 볼만한 곡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8번을 1811년(41세)부터 구상했다고 한다. 테플리츠라는 고장 머물면서 1년 뒤에 작업을 마쳤다. 8번은 베토벤이 귀가 완전히 먹은 뒤의 작품이었지만 밝고 명랑한 기운이 가득하다. 어느 정도 인생을 달관한 때문이었을까. 전투적인 요소는 없고 해학적이다. 개성보다는 창의력을 추구하고 있으며 열정에서 탈피, 다소 초월적… 철학적인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8번 3악장의 미뉴엣을 듣고 있으면 어딘가 겨울 서정이 느껴져 온다. 늘 열정적(여름)이었던 베토벤에게 어느덧 늦가을… 겨울이 찾아왔다고나할까,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산책에 나서는 베토벤을 연상해 볼 수 있다. 회색의 겨울하늘…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성큼 성큼 걷는 베토벤(미뉴엣)의 발걸음이 장중하면서도 서늘하다. 철학적인 멋이 풍기는… 이처럼 명쾌하고도 유쾌한 미뉴엣이 또 있을까.
모차르트가 고전 음악을 대중화시킨 공로자라면 베토벤은 음악의 위상을 격상시킨 공로자라 할 수 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는 아니었지만 철학적 예지가 있었다. 기지, 흐름보다는 고고하고 명상적인… 감동의 작곡가였다. 모차르트는 베토벤을 세상을 놀라게 할 인물이라고 평가했지만 이는 베토벤의 음악적 예지력을 가리킨 말이었을 것이다.
모차르트 역시 교향곡 39번같은 작품에서 베토벤 못지 않은 예지력을 과시했는 데 아이러니컬하게도 3악장 미뉴엣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모차르트의 39번을 답습했을까? 어딘가 모차르트을 연상케하는 교향곡 8번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모차르트의 39번처럼 미뉴엣이 아름답다. 아마 이 2작품은 쌍둥이였을 것이다. 아니면 미뉴엣이 개성이나 재능을 초월한, 음악 본연의… 인간 본연의 동경이 담겨 있음 때문이었을까…
음악은 소녀의 손가락으로도 울리 수 있는 것이지만 영웅의 마음도 움직이는 힘(감동)의 예술이다. 지구상에 그 무엇으로 스스로를 웃게 하고 위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무료한 일상을 예술에 희생하라- 베토벤은 음악의 감동력을 인식한 작곡가였지만 과연 말년의 고독을 음악의 힘으로 극복해 낼 수 있었을까? 산처럼 솟아 있고 바위처럼 견고한 리듬… 그러면서도 진한 고독이 물결쳐오는 베토벤의 미뉴엣을 들어보자.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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