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은혜로 이곳까지 왔습니다
예일대학교 초빙 교수.광복60주년 학술 심포지엄 전야집회서 간증
평양과 모스크바 서울거쳐 2003년부터 예일대학서 근무
어머니 신앙 물려받은 ‘모태신앙’ 북조선 선교 최선 다짐
저는 하나님 아니면 북한에서 이곳까지 올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일 저녁 순복음상항교회(오관진목사 시무)에서 광복60주년 학술심포지엄 전야집회의 강사로 나온 김현식교수(73)는 자신이 이 자리에 설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문을 열었다. 사회자인 조은석목사 소개로 강단에 나온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평양-모스크바-서울을 거쳐, 현재 세계의 명문대학인 예일대학교 교단에 서게 한 것은 하나님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함경남도에서 출생한 김현식교수는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명령에 의한 전쟁에 고교생으로 참전을 했다. 포화로 머리에 파편을 맞아 부상을 입은 그는 기차로 중국의 소학교로 실려갔으나 수술을 받지 못하고 25년이 지난후에야 파편 제거 수술을 받게 됐다. 김 교수는 92년 서울로 온후 한총련이 남에서 북침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면서 자신이 역사의 증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적화 됐을것이라면서 정말 고마우신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그는 평양사범대학(현재의 김형직 사범대)에서 노어 노문학을 공부했으며 동 대학원도 졸업했다. 김일성은 학습도 전투라면서 전쟁중에도 수업을 실시했으며 54년 졸업과 동시 학부 교수로 임명됐다.
모스크바 국립대 러시아어 재교육과정을 졸업,러시아어가 유창한 그는 러시아 국립사대 초청으로 교환교수로 강의를 하게 됐다. 가족은 북에 남겨두고 혼자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던 그는 함흥서 42년전에 헤어졌던 시카고 거주의 친누나를 만나게 됐다.4박5일간 머물던 누나는 제3국으로의 탈출을 권유했으나 끝내 거절했다고 밝혔다.그러나 누님을 만난 직후 이사실이 북한 당국에 보고되어 본국으로 귀국명령이 내리자 6개월동안 교민집에 잠적해있다가 92년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움으로 서울로 오게됐다.서울에 온 그는 한복 쇼를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을 당시 알게됐던 김현자씨와 결혼을 했다.
중풍으로 부인의 부축을 받아 강단에 나온 김 교수는 자신은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예수를 믿은 모태신앙이라면서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이금녀 집사)는 목사가 되라고 유언처럼 말했다고 전했다. 이날 김 교수는 10살 때 배운 주일학교 교가를 직접 불렀으며 교회에 가기전 헌금을 준비해주고 더운물로 씻겨주던 어머님의 사랑을 회고 했다.
김교수는 하나님께서는 50년간 김일성당의 당원이자 20년간 김일성 처가의 가정교사,38년간 평양사범대 교수,3년간 러시아대 초빙교수를 역임한 자신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북조선 선교의 길에 나서도록 이끌어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만간 북조선 복음화의 문은 열릴것이면서 북한선교에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003년부터 예일대학 초빙교수로 머물고 있는 김교수는 학교 당국의 요청에의해 영구 교수로 근무을 추진하고 있다.
<손수락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