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들을 때마다 가을이 느껴지곤 한다. 곡이 조금 이질적이어서 하나되는 감동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마치 자연의 신비로움을 보는 느낌이라고나할까, 마치 가을 숲 속에서 한 마리의 불새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듯한…, 야성 그 자체다.
음악의 피카소라고 불리우는 스트라빈스키는 너무 천재적이어서 오히려 반발이 드는 작품들을 많이 썼다. 그러나 ‘불새’만큼은 오히려 스트라빈스키의 방법이 마음에 든다. 아마도 낭만파 형식이었다면 그처럼 강렬한 표현을 완성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젊은 날의 고독… 늘 낙조와 같은 탄식으로 다가오는 ‘Magic Fire’였다. 마치 제 3의 여인이라고나할까, 음악이 연상케 하는 것은 결코 에로스는 아니지만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의 열망이었다. 아마도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이 용광로에 녹아서 분출하는 힘이라고 할까. 수천, 수만의 세월 동안 인간이 추구해온 구원…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지는 낙조… 바로 죽음 같은 삶, 삶 같은 죽음… 타면서 소멸하고, 소멸하면서 존재하는… 바로 사랑 같은 불길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감동을 느낄 때는 가장 정열적인 음악을 들을 때이다. 물론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기에 같은 감동을 기대하긴 무리지만, 열정적인 음악에서의 터져 나오는 그 ‘불꽃(Fire)’의 여운은 그 무엇보다도 진하고 강하다.
그러기에 가장 폼 있는 음악, 가장 멋진 음악을 꼽으라면 단연 ‘Fire’, 즉 불의 요소가 들어있는 몇몇 곡들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바그너의 ‘매직 파이어(Magic Fire)’등등은 제목에서부터 열기가 풍겨 나오는 감동의 명작들이다.
바그너의 ‘매직 파이어(Magic Fire)’는 악극 ‘발퀴레’에서 나오는 마지막 장면으로, 불새 못지 않게 로맨틱한 작품이다. 주신 보탄(神)이 딸 ‘발퀴레(천마를 타고 날아다니는 여신)’를 영원한 불꽃에 가두어 놓는 장면을 그린 작품으로 진한 로맨티즘은 아름다움을 넘어서 구도의 형태로까지 역류되어 파노라마치는 작품이다.
바그너는 사랑을 통한 구도 사상 중에서 애로스 못지 않게 ‘보탄-발퀴레’라고하는 부정(父情) 을 더욱 아름답게 표현했다. 아마도 신과 인간… 어버이와 자식간의 아가페적 사랑의 그 영원성 때문일 테지만 아무튼 악극 ‘발퀴레’만큼 사랑과 죽음의 그 찰라적인 순간을 불과 영원으로 아름답게 수놓는다.
- 지상에 영웅을 탄생시켜 세계 정복을 꿈꾸는 보탄(神)은 그의 명령을 거역한 지그문트를 살해키 위해 딸 발퀴레(천마의 여신)를 출격시킨다. 그러나 발퀴레가 지그문트를 살려주는 바람에 그 벌로 발퀴레를 영원한 수면 속에 가두려는 것이다. 발퀴레는 보탄에 호소, 자신을 영원한 불 속에 가두 돼 지상에서 가장 용기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이 자신을 깨우도록 마술의 불꽃(Magic Fire)을 지펴 줄 것을 부탁한다.
보탄은 자기 손으로 딸을 영원히 잠들게 하는, 비통한 심정으로 불을 지피고 죽음의 최면을 걸게 되는데… 곡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웅장한 선율로 수놓게 된다.
잘 가거라 장한 딸아!
한 때는 긍지이자 심장이었던 너/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내 눈 속에서 가장 눈부시고 아름답게 빛나던 너…
나는 지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다…
이제 두려움의 불꽃으로 너를 둘리게 하리니…
보탄은 불꽃으로 발퀴레를 장송하고 거대한 바위에 마술의 불을 둘러 발퀴레를 영원속에 가두게 된다. 불꽃은 석양처럼 훨훨 타오르고 ‘매직 화이어’의 신비로운 여운만이 어둠 속에 장엄하게 메아리친다.
음악을 하나의 에너지, 혹은 불꽃으로 비교한다면 발퀴레의 ‘매직 화이어’ 장면만큼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장면도 드물 것이다. 굵지하게 터지는 혼의 두터운 울림은 베토벤보다 강렬하고 남성적이다. 낭만주의 선율 ‘넘버 원’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아마도 불의 신비성 때문이었겠지만 음악의 힘이 워낙 강렬하여 히틀러는 전쟁에 나서는 장병들에게 ‘발퀴레’를 듣게 했다고 한다.
’매직 파이어’는 ‘발퀴레’ 중에서도 다른 차원의 감동이지만 가장 간결하게 바그너의 로맨티즘을 압축시켜놓은 작품이다. 곡은 장중하면서도 비통, 애절의 극을 치닫고 있는데 과연 하나의 음악이 이처럼 힘차게 영혼을 뒤집고 가슴속을 통곡으로 치닫게 할 수 있을까… 감히 말하면 낭만주의의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으로서 가을 석양을 보면서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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