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형 <워싱턴 문인회장>
폭염이 어눌한 몸짓으로 물러서고 아침과 저녁의 서늘한 바람은 코끝을 스치며 가을 냄새를 뿌린다. 진하지도 않은데 싱그럽고 상쾌하다, 어허 가을인가! 벌써, 앞뜰의 나무들 아직 성급한 몇 몇 잎이 불그레한 얼굴로 앞섬을 뽐내고 있을 뿐 진록의 옷 벗을 채비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느낌으로는 이미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금강산을 그리는 마음이 커지고 보고싶다는 욕심이 부쩍 늘었다.
금년에도 못 가고 마는가, 옛날에야 꿈으로도 그려본 일이 없건만 여건이 쉬워진 탓인지 유난히도 가고픈 마음이 크다, 방금만 해도 바로 코앞에 다가선 그 기회를 포기하고서 몇 날을 서운한 마음 달래느라 애썼다. 그렇다고 수탄(愁嘆)에 빠져있달 정도는 아니다.
금강산(金剛山), 듣는 것만으로 애정이 솟는다, 금강산 자락에 드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어릴적 어머니의 품에 파고들던 그 포만감과 포근함이 가슴을 메운다.
흑운암(黑雲岩)과 화강암(花崗岩)으로 형성되어 있는 기암괴석(奇岩怪石)들과 일만이천봉의 곳곳에 폭포와 연못과 절들이 있으며, 단풍이 익어 피어있는 경치는 세계 어디를 간들 이와 견줄만한 풍악(楓嶽)이 있단 말인가.
금강산(金剛山)은 봄에 불리우는 이름이고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 가을의 이름이 풍악산(楓嶽山)이다. 楓은 단풍나무를 뜻하기도 하나 모든 단풍의 잎을 일컫는 통칭이기도 하다, 또 嶽은 산은 산이로되 높은 산의 의미가 더 강하다. 고로 풍악산은 단풍의 산, 단풍이 절경인 금강산의 가을 이름이다
<십리 사장 세 모래가 정 맞거든 오려 하오, 금강산 상상봉에 배 띄어 평지 되거든 오려하오> 춘향전의 고본(古本)에 나오는 한 대목이라는 데 올 수 없는 형편 즉 불가능함의 최대치 강조어이다 설마 한들 금강산 찾는 길이 이렇게 가 볼래야 가볼 수 없을 만큼 멀고멀어 생전에 가볼 수 없는 곳은 아닐 터, 접어든 가을의 문턱에서 그리워하는 심사나 달래볼까 한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 예찬론을 쓸 수도 없거니와 그에 대한 깊은 지식도 없는 터에 아는 체도 할 수 없으니 그저 그리운 마음과 푸념 비슷한 심사를 토로하는 정도이다
사전에 기록된 바 금강산의 높이는 1,638m이며 위치 상으로 내무(內霧)재의 서쪽을 내금강(內金剛), 동쪽을 외금강(外金剛), 바다에 솟아있는 섬들을 해금강(海金剛)이라 부르며 특히 외금강에는 신만물초(新萬物草), 구만물초, 내만물초가 분포하고 있다한다.
눈길을 주고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반하여 눈길 없이 그리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볼 수는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보자. 사색의 여행이랄까, 조용히 눈을 감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나마 떠나보자, 풍진(風塵)의 세상으로부터 잠깐 떠나 완숙한 자연미를 내뿜고 있는 풍악산에 올라보자. 오늘의 답답한 현안들 정말 잊고서 말이다, 테러의 위협도, 전쟁의 상처도, 삐걱거리는 6자 회담도, 보안법 폐지를 외치거나 폐지는 결사 반대라고 외치는 것도, 과거사 청산이 어떠하다는 둥, 대통령의 서명만을 남기고 있는 북한의 인권법이니 뭐니... 자신의 갈등은 물론 가정사, 사회적 암울함,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는 이 모든 답답하고 숨막히는 현실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눈감아 풍악산의 절경을 불러들이자, 고엽처럼 바싹 말라 바스락 소리가 들리는 그 메마른 가슴속에 정겹고 그리운 금강산을 맞아드려 포근한 포만감으로 취해 보자. 이 가을의 문턱에 서서, 아마도 지금쯤 수줍은 소녀의 얼굴처럼 발그레한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풍악산의 단풍은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