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Fitzcarraldo(피츠카르도)’라는 영화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독일인이 만든 영화인데, 오아시스 대신 정글에서 낙원을 찾아가는 내용이 다를 뿐이다. 주인공 ‘피츠가르도’는 아마존 숲 속에 오페라 하우스를 건설하려고 배를 산 위로 끌어올리는 등 갖은 난관을 겪게 되는 데, 모든 순수한 열정이 그렇듯 결국 실패 속에서 마지막 선상음악을 통해 실패를 자위(自慰)한다. 피츠카르도가 그리던 지상낙원… 아마존의 향연은 이 땅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염원만이 꿈이 되고 음악이 되어 정글에 울려퍼질 때… 강한 남성이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그 꿈(야망)이 순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피츠카르도가 최고…!’ 본보 김기자는 자신이 본 영화중 ‘피츠카르도’가 최고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예상한 만큼 스펙터클한 영화는 아니었다. 주역 배우가 병으로 죽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찍는 등 갖은 난관 속에서 완성된 작품이었지만 영상보다는 마지막 도니제티를 연주하는 장면이 오히려 압권이었다. 그것도 청록의 정글, 꿈의 아마존이 아닌 흑탕물(아마존의 실제모습이겠지만)위에서 배를 띠우는 모습이 어딘가 어눌했지만 음악만큼은 비할 바 없이 아름다웠다.
음악은 아름답지만 높은 이상이다.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음악과 같은 아름다운 사랑…,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고(苦)일 뿐, 한편의 아리아로 해탈을 추구하는 현실의 존재일 뿐이다. 그러기에 음악은 아름답지만 붙잡아 둘 수도 다르게 표현될 수 도 없다. 음악은 도니제티가 어떻고 모차르트가 어떻고 … 보다는 직접 듣고 접하는 것이 최상이다.
도니제티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영화 피츠카르도를 보고 난 뒤였다. 남미에 오페라 하우스를 건설하려던 한 오페라광의 이야기가 남미의 후덥지근한 열기와 어우러져 한편의 진한 아리아와 같은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도니제티하면 떠오르는 것이 ‘루치아’와 함께 사랑의 묘약 중에 나오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다. 도니제티라는 이름보다도 널리 알려진 이 아리아는 비록 희가극 아리아지만 어딘가 묘한 내면의 비극이 비쳐지고 있다. 도니제티가 본래 비극적이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희극 속의 비극성… 비극 속에서도 희극적인 낭만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도니제티 음악의 독특성이다.
로시니와 함께 이태리 벨칸토의 3대 작곡가로 꼽히는 도니제티는 로시니와 마찬가지로 속필작곡가로 유명했다고 한다. 작품 수도 로시니보다 많은 70여편에 이르고 있고, 샘솟는 듯한 선율을 초인적인 속도로 오선지에 옮겨나갔는데, 만년에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정신병으로 단명하고 말았다.(51세)
도니제티의 음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말 그대로 오페라를 위한 오페라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극적인 박력은 베토벤 등을 따라갈 수 없었으나, 베토벤의 음악은 오페라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베토벤은 오페라를 거의 쓸 수 없었으며 모차르트조차도 오페라를 통해 수많은 역작을 남겼으나 극적인 수준에 있어선 이태리 작곡가들을 따르지 못했다. 도니제티야 말로 로시니와 함께 베르디의 계보를 잇게한 한 장본인이었다. 도니제티는 벨칸토 시대에 속했으면서도 후대 베르디 시대와도 견줄수 있을만큼 극적인 박력을 갖추고 있었고, 선율적 감각은 오히려 베르디보다도 탁월했다.
도니제티는 로시니와 마찬가지로 희가곡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펼쳤다. 이로 인해 작품이 경박하다는 비난도 따랐으나 ‘루치아’, ‘라 파보리타’등 무게 있는 비극작품으로 후대에 새롭게 인식됐다. 도니제티의 음악은 맑고 아름다우며 극적인 풍부함이 장점이었다. 선율은 낭만주의를 지향하고 있는데… 마치 선상음악에 알맞다고 할까…. 특히 ‘루치아’등은 도니제티의 몇 안 되는 비극 작품 중의 명작에 속하는 작품이다. 에쉰톤 가의 영주 엔리코, 여동생 루치아 그리고 루치아를 사랑하는 박클로우 경, 에드가르도등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영주 엔리코는 루치아를 박클로오우 경에게 결혼시키려하고, 박클로우의 적수 에드가로도를 사랑하고 있던 루치아는 결국 죽음으로 내세의 사랑을 기약하게 된다.
그 분의 부드러운 속삭임이 내 마음을 울렸습니다. 아! 그 목소리… 에드가르도, 나는 당신에게 돌아왔습니다로 시작되는 루치아의 광란의 아리아(3막)가 유명하며, 에드가르도가 부르는 로맨틱 아리아(3막) 아… 내 조상의 무덤이여, 불행한 혈통 중 마지막 남은 자를 받아 주십시오 …등은 테너 아리아 중에서도 가장 낭만적인 아리아에 속하는 작품이다. 특히 에드가르도의 테너 아리아는 저 세상의 영원한 안식을 추구하면서 말할 수 없는 한을 토해 내고 있는 데… 그 극적인 낭만성은 도니제티 아니면 감히 줄 수 없는, 감동적 테너 아리아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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