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희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한 남자가 별도 달도 없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남자 반대편에서 시각장애인 노인이 등불을 켜고 더듬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게 생각한 남자가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시각장애인이면서 왜 등불을 다니고 다니십니까?”
그러자 노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 등불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내가 앞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편에서 오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밝은 길을 전해주고 싶어서 그렇지요.”
이 일화는 남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이 자신에게 두 배 이상의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자신의 뜨거움으로 세상을 밝히는 태양, 조건 없는 하느님의사랑, 대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적인 부모 사랑 등이 우리 삶을 밝히는 등불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러나 인간은 때로 자신이 먼저 베풀기보다는 상대방이 먼저 베풀기를 원하다보니 오해와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내 이웃에게 그늘과 안식처가 되어 준 적이 있는가 뒤돌아본다. 척박한 이민생활 속에서 서로의 기쁨과 고통을 나눌 때 가슴을 녹이는 훈풍이 되고 서로의 가슴에 꽃이 피게 한다면 삶은 더욱 아름답지 않은가?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사람이 사람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까닭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하느님의 사랑도 많이 받았고 가족과 주변 이웃에게서 많은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살아왔다. 특별히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주변 분들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받기만 한 사랑에 대하여 내가 베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면서 세상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글쓰기는 내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고 인생에서 경험한 일상들을 독자들과 나누며 더욱 진솔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또한 세월이 갈수록 부모는 영원한 약자라는 것이 실감난다.
이제는 세 손주 할머니 되어 내 자리는 점점 작아지고 더 줄 것이 없는 듯한 안타깝고 쓸쓸한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이것도 인생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해본다. 인생은 선택의 여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택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어떠한 장애와 역경 속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은 보람있는 인생이 아닌가.
인생의 날씨도 삶의 희로애락처럼 수시로 바뀐다. 그 어떤 날씨도 반드시 그럴만한 이치와 뜻이 있는 법, 때로는 거친 시련과 절망도 우리인생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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