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피터 누엔과 같이 탈출했던 베트남 난민들의 단체 사진. 이들의 얼굴에는 자유를 되찾은 기쁨으로 모두가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공산치하 탈출서 미국까지
목선 표류 ‘절망’ 나흘째
저 멀리 남한 배 ‘희망의 빛’
지난 85년 11월 남중국해 망망대해에서 침몰 직전의 목선에 매달려 죽음을 떠올렸던 피터 누엔(60·웨스트민스터)이 당시 참치잡이 원양어선 ‘광명 87호’ 선장 전제용씨를 만난 것은 천운이었다. 은혜를 잊지 않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그는 지난 92년부터 백방으로 전씨의 소재를 수소문해 이제 미국에 초청하기에 이르렀다. <1>공산치하 베트남을 떠나 목선에 몸을 싣고 표류하다 남중국해에서 전씨를 만나기까지, <2>구조돼 부산에 머물다 미국에 오기까지 <3>미국에 정착,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리기까지 순으로 누엔의 파란만장한 삶을 게재한다.
참치잡이 원양어선
전제용씨 만난건 ‘천운’
가족엔 “꼭 데릴러 오마”
홀로‘엑소더스’ 부산도착
1975년 4월30일. 사랑하는 내 조국이 지도에서 사라졌다. 집 앞 대로를 통과하는 북 베트남·남 베트남 해방민족전선(베트콩)군의 사이공 입성을 넋 놓고 바라만 봐야하는 현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거리는 온통 베트콩 국기로 뒤덮였으며 극심한 교통체증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내 삶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공산정권은 트랜 반 트라 대장 이름으로 사이공정부 소속 군인들의 신고를 명령했다. 나도 신고했다. 68년부터 합동군사위원회 연락장교, 파리협정위반감시 및 포로교환업무 담당 장교로 군복무를 했기 때문이다. “단기간의 정치학습 과정에 참여하라”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그날 저녁 오랜 가족회의 끝에 온 가족을 데리고 나트랑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실패. 그 일로 나는 재교육 수용소에 수감됐다. 말이 좋아 재교육이지 징역살이와 다름없었다. 나는 투이 호아 산악지대에 있는 4개 수용소를 전전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수감생활 동안 가족 면회도 금지돼 아내 낸시와 세 아들의 소식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1980년 11월1일. 나는 5년 6개월의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자유의 몸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석방된 기쁨도 잠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또 한 번 공산정권에 대한 울분을 삼켜야 했다. 그들은 내가 사이공 정권을 위해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에게 온갖 차별과 고통을 가했다.
우선 거주지 이동 제한을 받았으며 세 아들의 상급 학교 진학이 금지됐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고위 간부로 일한 군인의 자녀일수록 공산정부의 감시와 차별은 심했다. 뿐만 아니다. 나의 모든 애정과 추억이 서려 있는 2층집도 공산정권에 빼앗겨 버려 아내와 아이들의 고생은 오죽했으랴.
미래는 없었다. 결국 나 혼자만이라도 먼저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탈출에 성공해 자유의 나라에 정착하면 꼭 데리러 오마”라는 약속만 남긴 채 85년 11월 10일 나는 그렇게 목선에 올랐다.
탈출 4일째. 우리가 타고 있던 배가 고장나 나를 포함한 96명의 난민들은 졸지에 해상 미아가 돼 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량과 식수, 그리고 기름도 떨어졌다. 아이들은 굶주림에 울부짖고 임산부들은 탈진 상태였다. 배는 온통 피부 부스럼과 상처투성이의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로 메아리쳤다. 목선에 오를 때 동행했던 ‘희망’은 조금씩 ‘절망’으로 우리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멀리에서 보이는 희미한 불빛. 우리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갑판으로 올라가 손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했고 선박은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간 북한 선박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에 조심스럽게 “당신들은 북한 사람이냐?” 물었다. 선박에서 돌아온 짤막한 답변은 “남한”.
우리는 그렇게 한국 국적의 ‘광명 87호(선장 전제용)’에 의해 구조돼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리-이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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