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빡빡 머리 중학교에서의 첫 조회시간은 여지껏 가슴 뿌듯한 추억거리로 남아있다. 교장 선생님이 입장하는 순간, 밴드부에 의해 울려퍼지던 행진의 우렁찬 나팔소리는 잠자던 영혼을 흔들고 깨워 마치 스스로 그 우렁찬 나팔 소리와 함께 행진하며, 교장 선생님 이라도 된 듯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 때의 경험 때문인지 행진곡에 대한 감정은 늘 특별함으로 남곤 했고, 지금도 누군가가 대 지휘자 처럼 지휘봉을 들어 지휘하도록 허락한다면 행진곡풍의 곡들을 멋들어지게 한번 지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베토벤의 ‘웰링톤의 승리’,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등은 멋진 지휘 폼이 연상되는 신바람나는 곡들이다. 물론 이런 곡들은 연주회에서 실지로 들어본 적도 있고, 또 아직 들어 보지는 못한 곡들도 많지만 현악기와 관악기가 대치(대위법),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이끌어내는 이러한 음악의 힘이야 말로 가슴뭉클한 감동, 응혈진 가슴 속의 덩어리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게 하곤 한다.
특히 통쾌한 음악의 대명사로서 빼놓을 수 없는 곡들이 바로 트럼펫 곡들이다. 트럼펫은 흔히 나팔로도 불리우는 대표적인 금관 악기로서 그 용맹스러움과 청아한 소리로 군대악기(군악대)로는 물론 일반에게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클래식의 경우 트럼펫은 13세기경 아랍에서 유럽으로 유입된 나필(nafil)이 발전하여 오늘날의 모양으로 되었다고 한다. 16∼18세기에 그 전성기를 이룬 바 있으며, 음악형식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악기로 사랑 받아왔다.
트럼펫의 특징은 영혼을 뒤흔드는 듯한 맑고 고적한 소리…, 분명하고 직선적인 소리다. 비발디, 헨델, 바하 등이 트럼펫을 통해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하이든과 휴멜등이 트럼펫 협주곡을 통해 대중과 친숙한 곡들을 남겼다.
트럼펫하면 떠오르는 것이 물론 비발디의 협주곡과 바하의 브렌덴 브루크 협주곡 등(바로크 음악)이지만 낭만파 작곡가들에게서는 어쩐지 트럼펫을 위한 음악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아마도 트럼펫이 주는 튀는 소리가 ‘혼’의 깊고 따스한 맛, 클라리넷이나 플룻 등이 주는 다양한 맛이 없기 때문이었겠지만 바로크 시대만 해도 트럼펫은 널리 애용되던 악기였다.
트럼펫의 당당한 음색은 음악이 지향하는 정직성과 객관성을 갖추고 있다. 물론 음악이 시·문학 등과 결탁, 애매 모호한 취향으로 흐르게 되는 낭만주의 시대부터 트럼펫은 점차 활약이 줄어들게 되지만 사실 가장 예술성 있는 음악이 바로 트럼펫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펫 소리를 들으면서 혼령이 감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삶에 지쳐있거나 감성이 메마른 사람들이다. 트럼펫의 당당하면서도 내면에 울리는 청아함은 전몰장병을 위한 묘지참배의 트럼펫 소리가 아니라도 어딘가 밤하늘의 먼 별빛으로부터 울려오는 듯한 태고의 감성을 느끼게 한다.
트럼펫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주페의 ‘경기병 서곡’,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 ‘갈잎 피리의 무곡’ 등이지만 트럼펫의 요소를 절묘하게 살린 곡으로서는 역시 하이든(墺, 1732-1809)의 트럼펫 협주곡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트럼펫음악은 비발디의 협주곡, 코렐리의 협주곡등 바로크 음악들이 더욱 트럼펫의 맛을 살리고 있으나 대중적으로 함께 나누고 싶은 곡으로서는 단연 하이든의 곡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하이든의 음악은 그의 104편에 달하는 교향곡들이 그렇듯, 매우 트럼펫과 닮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적 형식미를 갖추고 있고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듯한 가볍고도 부담감 없는 소리로 가득하면서도 음악의 사치적 측면에서 경시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이든과 트럼펫과의 관계는 언젠가 ‘하이든과 트럼펫’이라는 제목으로 언급한 바 있으나 음악에서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하면서도 혼, 클라리넷 등에 밀려 주요 악기로서 크게 취급받지 못하는 것이 트럼펫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진실이 그렇듯 너무 흔하기 때문에 천대받는 악기가 트럼펫이라고 볼 때, 당신의 영혼이 오늘 지쳐있고 허기져 있다면 트럼펫에서 흘러나오는 고고한 음색을 통해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은 1797년 빈 궁정에서 활약하던 바이딩거가 새로 고안한 트럼펫을 위해 작곡했다고 한다. 트럼펫의 특성이 잘 살아있는 이 곡은 경쾌하고 평화로워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약 15분간 연주되는 트럼펫의 후련한 소리는 학습·업무에 지친 영혼을 망망대해… 희망의 나라로 훨훨 날아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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