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베르디(伊 1813-1901)는 베토벤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위대한 작품을 남긴 작곡가였다. 베르디는 베토벤 보다 약 40여 년 늦게 태어났으나 내성적이며, 칩거를 즐기는 고독한 성격 등은 베토벤과 매우 흡사했다. 베르디와 베토벤의 다른 점은 극적 감각이었다. 베토벤이 순 음악을 통해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면 베르디의 위대성은 극음악에서 나타난 극적 감각이었다. 인간이란 과연 호흡하는 것만으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비극의 달인이었던 베르디는 그의 탁월한 극적 재능을 통해 인간이란 얼마만큼 아플 수 있는 존재이며, 아픔을 통하여 성숙할 수 있는 존재인가를 ‘나부코’, ‘춘희’, ‘리골레토’등의 작품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베르디의 예술은 한마디로 계시적이었다. 24세 때 ‘나부코’ 작곡 이후 신들린 듯이 작품을 써나 갔던 베르디는 마치 신탁을 받은 듯 어마어마한 내적 지시에 따라음악을 써나갔는데, 베르디처럼 같은 선율의 반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음악사에서 찾아 보기 드물 정도이다.
베르디는 음악과 극과 만나는 찰라적 순간을 불꽃으로 형상화시킬 줄 알았던 탁월한 작곡가였다. ‘나부코’, ‘멕베드’ 등에서 분출되는 박력, 도취 앞에서 이성는 적어도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 인간이란 얼마만큼 이성이 이해하는 것보다도 고통스러운 존재인가, 인간이란 얼마만큼 고통에서의 해방을 열망하는 존재인가를 베르디는 적어도 그의 극적인 박력을 통해 인류에 보여주었다.
베르디는 위대한 오페라를 수없이 남겼으나 결코 위대한 작곡가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베르디는 한 사람의 작곡가로 남기에는 너무도 특별한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베르디는 ‘비극’ 아니면 거의 손을 대지 않았는데 이는 세익스피어, 고대 희랍의 비극정신들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었다. 젊어서 아내를 잃은 베르디는 한 사람의 행복한 음악가로 남기에는 너무도 인생의 비극에 정통해 있었다.
베르디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오페라 ‘리골레토’였다. 물론 베르디는 40여 편에 가까운 오페라를 남겨 모두 명작으로 평판 받고 있으나 ‘춘희’, ‘아이다’, ‘일트로바토레’ 등 대표작이 탄생한 시기는 ‘리골레토’의 성공으로 고무된 이후부터였다.
’리골레토’의 성공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비 베르디적인 요소 때문이었다. 아리아의 아름다움보다는 극적인 박력이 전매특허였던 베르디는 리골레토부터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선율미를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아리아와 극적인 요소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리골레토’는 초연이후 근 30년 간 유럽을 휩쓸며 오페라사에 새 금자탑을 세우게 됐다.
베르디는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리골레토’ 이후 예술적인 박력은 조금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대중적 재미는 증가되기 시작했다. 특히 ‘여자의 마음’등 명 아리아들을 히트시키며 유럽의 인기 작곡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는데 ‘축배의 노래’,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 ‘청아한 아이다’등 베르디의 유명한 아리아가 등장하는 시기도 바로 ‘리골레토’ 이후 부터였다. 그 중 ‘여자의 마음’은 베르디의 아리아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테너들이 앞을 다투어 부르는 명 아리아 중의 하나이다.
3막. 민치오 강변의 자객 스파라푸칠의 주막에는 만토바(공작) 살해를 부탁 받은 스파라푸칠이 칼을 갈고 있고, 옆에는 그의 누이동생(막달레나)이 만토바 공작의 유혹을 받고 있다.
밖은 폭풍우가 일기 직전. 리골레토와 딸 질다가 막달레나를 유혹하는 만토바 공작을 지켜보고 있다.
만토바를 죽이려는 리골레토의 마음을 알아차린 질다는 공작을 대신해 죽을 결심을 하고, 리골레토는 딸을 욕보인 만토바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 일촉즉발의 위기도 알아채지 못한 채 만토바는 마냥 막달레나를 유혹하는 데 여념이 없는 데---
La donna e mobile…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언제나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린 다네/
예쁜 얼굴이나, 애처러운 표정이나/ 마음속은 언제나 속임수 뿐/
여자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 마음과 순정을 주는 자에게나/ 믿음을 바치는 자에게나/ 재앙만 가져다줄 뿐이라네/
여자의 마음은…
베르디는 당시까지 보여주었던 예술적 중량감에 비하면 낯간지러울 만큼 나긋나긋한 아리아 들을 리골레토에서 등장시켰는데 1막에서 질다(소프라노)가 부르는 Caro Nome’, 3막의 만토바(테너)가 부르는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등은 비극 작품 리골레토 속에서 청량음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극은 노래와는 정반대로 처음 사랑한 사내(만토바)를 위해 여인(질다)의 죽음으로 끝맺게 되는 데, 아리아 ‘여자의 마음’의 위력을 갈파하고 있었던 베르디는 공연 때까지 ‘여자의 마음’ 유출을 철저히 감시했다고 하는데 ‘여자의 마음’은 베르디의 예견대로 공연 직후 전 유럽을 휩쓰는 대 히트 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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