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지 약 4개월 후인 작년 8월말 국방부는 직원들에게 ‘알제 전투’(Battle of Algiers)라는 1965년도 영화를 상영했다. 알제리 독립을 위해 무차별 테러 행위를 자행한 아랍단체와 프랑스군의 투쟁을 그린 이 명작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다시 주목을 받아 올해 초 뉴욕시에서 상영된 데 이어 올 가을 3개 디스크 세트로 DVD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국방부는 이 영화를 소개하는 전단에서 테러단체를 소탕하기 위해 고문과 살인을 동원한 프랑스군이 전투는 이겼으나 전쟁에서는 패배했다며 영화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당시 국방부가 이 영화를 통해 프랑스의 ‘베트남’에서 어떤 교훈을 찾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지금 오히려 이라크는 점점 알제리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물론 이라크 사태를 알제리 독립운동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는 식민지 알제리와 다르며 당시 알제리는 유엔결의안을 위반했다거나 사담 후세인과 같은 독재자아래 시달리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WMD)가 발견되지 않고 9.11테러와도 전혀 연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제 전쟁 명분은 사담 후세인의 축출에서밖에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전쟁으로 민주주의를 수출한다는 착상은 식민정책이 식민지에 유익하다는 제국주의 구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 아닌가.
팔루자 및 나자프 사태를 볼 때 저항세력이 후세인 추종자들과 외국 테러리스트들에 국한됐다고 더 이상 고집할 수 없게 됐다. 이라크 민심에 미군이 해방군에서 점령군으로 변하는 순간 사태는 전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 틀림없다.
이라크가 전쟁 이후 자살테러가 등장하는 등 이미 알제리를 닮아 가는 가운데 알제리가 독립 이후 세속주의와 이슬람 세력간의 유혈분쟁에 휩싸인 것처럼 이라크에 내전의 씨앗이 심어진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영화 ‘알제 전투’의 교훈은 군사작전을 불가피하게 수행하는 도덕적 이슈를 지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 프랑스 장군은 기자들에게 고문 등의 잔혹 행위를 옹호하면서 “당신들은 프랑스가 알제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한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불가피해진 필요악이라는 말이다.
최근 출간된 여러 서적에서 드러났듯이 이라크 전쟁은 외교적인 방안이 추진되기 전에 이미 결정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결단하기 전에 불가피한 민간인 피해 등 부수적인 피해에 대한 숙고가 부족하지 않았는가 생각이 든다.
우정아<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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