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워싱턴한인교회협 회장 박석규 목사 은퇴
-평생의 글 모아 ‘영원한 오늘’ 출간
전 워싱턴한인교회협의회 회장(12대) 박석규 목사가 41년의 목회를 마감하고 첫 미주 목회지였던 워싱턴으로 귀향했다.
62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청년의 때부터 하나님 말씀 증거에 삶을 바친 박 목사.
“저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된게 감사하지요. 항상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고 부끄러운 것이 많습니다.”
한국, 남미, 미국... 하나님께서 어디서 부르시던 철저하게 복종하려 애썼고 목사로서 ‘성령충만’한 삶이 목회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목사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머니는 박 목사를 목회의 길로 이끌려 했지만 젊은 나이에 방황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어머니의 기도로 신학교를 갔고 구원의 체험도 없이 전도사도 했다.
“논산 영암 기도원에서 깨졌습니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성령 체험을 한 것입니다.”
육군 군목을 마치고 인천 부평중부감리교회를 담임했다가 남미 선교사로 부름받았다.
워싱턴에 발을 디딘 것은 1981년. 포토맥연합감리교회를 10년만 담임하겠다는 선언대로 1990년 물러났다. 그리고 뉴욕서 목회를 하다 뉴저지 리빙스턴연합감리교회를 마지막으로 설교 강단을 내려왔다.
“제가 좋아하는 설교 주제는 예수의 보혈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이 없었으면 죄인된 우리가 어찌 은혜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자기 성찰’이란 단어는 박 목사가 은퇴할 때까지 붙들고 살았던 또 하나의 계명이었다.
몇 년 전에는 틈틈히 써왔던 시, 수필, 수상들과 맘에 드는 설교를 모아 ‘영원한 오늘’을 출간했다. 환갑 때 내려 했지만 너무 이르다 싶어 미뤘었다. 이 책 속에는 67년 군목시절에 썼던 글도 있다.
워싱턴에서는 반병섭 목사, 허 권 목사 등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결성, 현 워싱턴문인회의 기초를 놨다.
뉴욕서 목회 당시 본보에 자주 기고하며 왕성한 필력을 보여줬던 박 목사는 “글재주나 교회 자랑보다는 예수를 높여야 할텐데 그렇지 않을까봐 조심스럽다”며 “모처럼 찾은 개인 시간들을 자유롭게 여행도 하며 써야겠다”고 여유를 보였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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