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군악대의 구슬픈 진혼 나팔소리가 울려퍼지는 늦은 봄 1971년 5월29일 나의 아우 고 김기섭 대원의 위령제가 유가족을 비롯 당시 홍종철 문교부 장관과 내외 귀빈 그리고 수많은 산악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뒤이어 보고회와 등반 사진전시회가 전국으로 개최됐고 그후부터 제 2차 등반준비가 시작됐다. 역시 고인이 된 동생 김호섭 대원을 데리고 일본과 유럽으로 가 직접 최신장비와 식량을 구입, 네팔로 발송하고 둘이서 알프스 등반을 마친 후 귀국 막내아우인 김예섭을 포함 10명의 대원을 선발했다.
혹시 어린 막내(당시 21세)까지 잘못될까 불안감 때문에 반대했으나 본인의 강철과 같은 의지와 ‘하다 하다 안되면 남은 형제 모두 기섭이 옆에 눕자’는 동생 호섭의 비장한 결의에 따라 예섭을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10명의 대원과 조선일보 기가, 일본 카메라맨, 세계적으로 유명한 10명의 쉘퍼, 23명의 보조원, 10톤이 넘는 우리의 짐을 나르는 인부 등 총 400명 이상의 대부대로 편성된 2차 마나스루 등반대는 1972년 2월27일 카투만두를 출발, 장도에 올랐다.
당시 돈으로 4,000만원(당시 미화 10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대설욕전이라는 운명을 건 등반이었기에 준비에 아낌없이 돈을 썼다. 카라반을 시작한 지 2주만에 해발 4,300m의 베이스 캠프에 도착, 고 김기섭 대원의 동판을 세우고 추모식을 올렸다.
이어 잦은 폭풍설로 인해 고생 고생해 행진을 거듭한 끝에 제 3캠프를 설치했고 뒤이어 김호섭, 오상군(오대원도 목숨을 잃었다) 대원 일행이 제3 캠프로 옮긴 3월31일부터 2일간 계속 쏟아진 폭설이 2m가 넘어 각 캠프의 기능이 마비되고 장비와 식량 손실이 너무 컸다.보통 등반대였다면 포기했을 터인데 우리는 대 설욕전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기에 별 지장은 없었다.
아코디언 연주로 대원들을 격려하고 진두 지휘하던 김호섭 대원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제1, 제2 캠프 때와 같이 폭설 가운데 올라갈 때마다 쫓겨 내려온 것이다. 이를 눈치챈 막내 예섭이 형을 쉬게 할 겸 아래로 내려보내고 대신 자기가 최전방을 담당하겠다고 했으나 호섭이 이를 들을 리 만무였다.
4월4일 필자는 고인이 된 오세근, 최석모 대원과 함께 제 3캠프로 진출했다. 고산병을 앓던 최석모 대원은 제 2캠프로 하산시켰는데 이 때문에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필자는 5명의 쉘퍼를 데리고 7시간의 루트 공작끝에 해발 7,250m지점에 제 4캠프를 설치하고 돌아왔다. 제4 캠프에서 바른편 능선을 돌아 정상까지는 산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8시간이면 도달 할 수 있다.날씨가 좋으면 제5캠프 설치 없이 직접 정상으로 가기로 했다.
정상 도전에 필요한 산소를 포함 모든 장비가 충분했고 몬순이 오기까지 시일도 40여일 여유가 있어 날씨가 좋으면 성공할 수 있었다. 제4캠프를 설치하고 난 뒤라 피곤했으나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김호섭, 오세근 대원은 열심히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4월8일 날씨가 좋았다. 필자는 제 3캠프에서 등반이 끝날 때까지 정상등정대와 지원대를 진두지휘 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이날 제 1캠프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지원대 회의를 주재하도록 돼 있어 대원들의 성황에 못 이겨 2일 후 다시 올라오기로 하고 모든 짐을 놓아둔 채 내려왔다. 필자가 4일간 머물던 제 3캠프를 잠깐 비운사이에 바로 그곳 제3캠프가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