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차에서 내리려고 보니 가방이 없었다. 중년 여성에게 많이 나타난다는 이 건망증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 내 서글픈 중년을 더욱 상기시키는데.
얼마 전 어느 집에 갔다가 식후 커피를 끓여온다는 분이 소식이 없어 부엌에 가봤더니, 커피가 부엌 바닥과 카운터 위에 온통 흘러 넘치고 있었다. 잊어버리고 커피머신에 주전자를 올려놓지 않고 스위치를 켰다고 하는데, 난감한 표정엔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라고 확실히 쓰여 있었다.
이럴 때 위로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 더 심한 예나 실수를 드는 것. "저는요, 작은 계산기를 전화기인줄 알고, 몇 번이나 전화번호를 누르고 귀에 갖다 대고 한참을 있었다니까요. 그리고 무엇을 가지러 아래층엘 내려왔는데, 그 무엇이 무엇인지 생각이 안나 다시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몇 번을 하구요.
양말빨래를 쓰레기통에 넣질 않나, 목적지까지 다 가서는 전기 스토브 안 껐다고 돌아와 보고, 또는 문 안 잠근 것 같다고 돌아와 보고. 열쇠를 집안이나 차안에 두고 그냥 잠그거나, 스토브에 국 올려놓고 태우는 일도 자주 해요. 한번은 마이크로오븐에 음식을 넣고 집 전화번호를 누르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아무 소식이 없어 이제 새 것으로 바꿀 때가 되었나 하고 죄 없는 마이크로오븐만 의심했다니까요"
그것도 자랑이라고 위로 차원에서 한참을 떠들었더니 자기보다 중증이라 싶었던지 안심하는 빛이 역력하다. 삼십이 넘으면 일시적 기억력이 감퇴하고, 그 감퇴현상에도 불구하고 처리해야 할 정보가 많기 때문에, 뇌를 혹사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현상이 건망증이라는데. 아! 이 건망증도 실은 내 뇌를 보호하기 위한 차선책이었다니… 훗날 치매까지도 염려되는 요즈음, 치매 예방엔 하루에 와인 두세 잔씩 마시면 좋다고 하고, 고스톱도 도움이 된다는데 그렇다고 와인 두세 잔 마셔가며 고스톱이나 칠 형편도 안되고.
’모두들 잠들은 고요한 이 밤’ 가방 찾으러 되돌아가는 외로운 길, 나훈아 오빠 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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