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교사와 부모들의 면담이 있는 어느 날. 바쁜 일손을 놓고 그 복장 그대로 학교를 찾은 어머니를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라고 친구들에게 말하는 자녀들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게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한인들의 미국 이민이 한창이었던 70년대와 80년대의 한인 1세들은 생활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 정신없이 바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그래도 자식 교육에는 남다른 한인 부모들이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한인 청소년들이 다른 미국 친구에게 왠지 모를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고 치자.
부모들은 자녀가 기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큰 집과 좋은 차를 구입하기도 했고 자녀들이 공부라도 잘해서 아이비리그에 입학하면 큰 보람과 함께 두고두고 자랑거리로 삼았다.
90년대 이후에는 한인 1세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영어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영어만 권장했지만 이제는 한인이라면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들이 대부분의 한인 부모들 마음에 뿌리내렸다.
한인임을 떳떳하게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생각은 부모들의 직업 또한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의식을 심어줬다. 오히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만큼 너희들도 공부 열심히 하라는 식으로 바뀐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은 것은 직업에 대한 의식인 것 같다.
한인들의 주요 직종은 여전히 청과와 수산, 세탁, 식품, 귀금속, 건설 등에 몰려있다. 화이트칼라의 직종은 아니지만 한인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자랑스러운 직종들이다.
뉴욕 한인사회의 이민역사가 40년 가까이 되면서 어린 자녀들이 성장해 가정을 일구는 나이들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좋은 대학과 커리어를 쌓아왔을 터이다.
그러나 이들이 미국 사회에서 겪는 정체성과 보이지 않은 장벽들도 상당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부모들의 가꿔온 직종에 눈길을 돌리기도 한다.
자녀들이 당신의 가업을 잇겠다고 얘기한다면 어떤 응답을 할까. 원한다면 해보라고 할까, 아니면 반대할까. 역으로 자녀가 자신의 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주위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할까, 아니면 가능한 한 숨기려고 할까.
각자 해답이 다를 수 있고 막상 그 입장이 되지 않아서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인들이 텃밭을 일궈온 직종을 자녀들이 물려받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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