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일러 오브 파나마> vs <그레이 올>
피어스 브로스넌이 누구인가. 바로 섹시한 정의의 사자 ‘007 제임스 본드’. 그가 별난 변신을 했다. 자신의 이미지를 패러디하는 첩보원과 캐나다 숲속의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인디언 아닌 인디언. 결과는? 절반만 성공.
영국 부어 맨 감독의 <테일러 오브 파나마(The Tailor Of Panama)>는 제임스 본드를 갖고 논다. 영국 스파이 앤디 오스나드(피어스 브로스넌)의 ‘미션’은상사의 아내와 바람 피우기, 동료 여직원 유혹하기, 활동비 떼어 먹기, 협박으로 정보원 만들기 등이다. 피어스 브로스넌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출세작을 마음껏 조롱한다. 대신 그가 얻은 것은 제임스 본드에 만족하지 않는 ‘머리있는’ 배우라는 이미지이다.
파나마로 좌천된 오스나드가 영국인 재단사를 협박, 그로부터 정치권 정보를 얻어내려할 때까지만 해도 영화는 첩보물의 모양새를 유지한다. 그러나 중국 여성이 나오는 포르노를 보면서 “파나마가 중국이나 대만과 운하 매각을 추진 중” 이라는 말을 흘리는 대목부터는 완벽한 코미디가 된다. 정치적 조롱에 깊이가 있다. 원숙한 배우 제프리 러쉬가 진지하게 거짓말하는 재단사 해리 역을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레이 올(GreyOwl)>은 실존 인물이다. 영국 백인이면서 어머니가 아파치라고 우기며 야생의 생활을 하며 환경운동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디언이다. 그는 노랑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길게 땋고는 희귀종 동물보호에 앞장선다.
전통적인 인디언 복장으로 영국인들 앞에서 멋진 연설을 하는 그레이 올. ‘간디’ 의 거장 리처드 아텐보로는 그의 행적만 좇았을 뿐, 그의 내면과 갈등을 영화적으로 증폭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는 별난 인물을 선택했음에도 책을 읽는 듯한 ‘자연사랑’ 이야기가 됐고, 그레이 올과 설득력 없이 그를 무작정 따르는 스무살이나 어린 인디언 여자 포니(애니 칼리포우)의 사랑 이야기가 됐다. 제임스 본드가 임무수행을 위해 잠시 인디언으로 위장한 것은 아닐까.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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