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한민족 포럼’에 참가했다가 일본 삼경중 하나라는 미야지마 해상국립공원의 이쓰쿠시지마 신사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1400여년전 바다위에 세워진 이 신사에 대해 가이드는 ‘일본인의 정신이 숨쉬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이곳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적들을 모두 제압한 뒤 제사를 드리고 수군을 정비해 조선정벌에 나선 곳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얕은 바닷물 위로 대형무대를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자가 궁금해 하자 가이드는 오는 8월에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같은 행사가 열리게 된 배경에는 ‘평화의 도시’라는 히로시마의 이미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다음날은 원폭의 상처가 그대로 간직된 평화공원을 둘러보았다. 사진으로만 봤던 원폭 상징물 겐바쿠도무의 앙상한 철골은 끔찍했고 기념관의 전시물과 사진들은 보는이로 하여금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호텔로 돌아와 행사진행을 맡고 있는 재일동포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이 남성은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히로시마가 원폭으로 큰 피해를 입고 평화의 소중함을 세계에 일깨워 줬지만 지금은 평화의 도시라는 명성을 정치적·사회적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원폭에 대해서도 성능을 알아보기 위해 일본인들이 실험대상이 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히로시마를 통해 보이지 않게 보수·반미정신을 시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을 주의깊게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12일 정오 LA다운타운의 일본영사관 앞에서는 역사교과서 왜곡 시정을 요구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펼쳐졌다. 시위자들은 일본정부가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지 말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다뤄줄 것을 요구했다. 세계 71개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이번 시위에 대해 일본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히로시마라를 내세워 ‘평화’를 유난히 강조하는 일본정부가 ‘진정한 평화주의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일본정신의 진원지라는 ‘이쓰쿠시지마 신사’에서 일어선 사람들이 나중에 무슨 일을 저질렀고 원자탄이 왜 자신들의 머리위로 떨어질밖에 없었는지를 깨닫고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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