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적 추억찾아가는
▶ 아동문학가겸 삽화가 앨런 세이 작품전
아동문학가 겸 삽화가. 37년 일본 요코하마 태생으로 12세때 이민와 현재 오레건 포틀랜드 거주.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사무라이 가문의 일본계 미국인 엄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2세다.
아동문학계의 권위있는 ‘뉴베리 칼데콧’(Newbery Caldecott) 상을 2차례나 받은 앨런 세이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앨런 세이의 저니’(Allen Say’s journey)라는 타이틀로 일미박물관에서 내년 2월11일까지 계속된다. 전시회에는 그가 그린 예쁜 수채화 삽화 30여점과 가족관계를 보여주는 사진등이 전시되며 다양한 웍샵도 열린다.
지난 주 전시장에서 인터뷰를 가진 앨런은 "세이가 본래의 성이 아닌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일제때 고아로 영국인 가정에 입양돼 상하이에서 자란 아버지는 아마도 최씨였으며 영국인들이 ‘세이’라고 불렀을 것으로 그는 추측한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나 그리움은 크지 않다. 아마도 자신과 어머니를 버렸다는 어릴적 기억과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의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사고가 예술적이고 섬세했던 아들 앨런과는 좀처럼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대부분은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소재로 하고 있다.
91년 ‘트리 오브 트랜스’, 93년 뉴베리 칼데콧상을 받았던 ‘할아버지의 여정’(Grandfather’s journey)과 99년 내놓은 ‘우유를 탄 차’(Tea with Milk)등이 대표적인 작품들.
일본인들의 이민이 시작되던 1900년대초 미국에와 가족간의 정략결혼으로 할머니를 맞은 할아버지, 또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어머니. 할머니는 미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머니를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가지만 미국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딸과 갈등을 빚는다. 어머니는 사무라이 가문을 앞세우는 할머니를 떠나 도회지서 직장 생활을 하다 6개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잘 생긴 한국인을 만나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그들은 앨런이 9살 되던 해 결국 이혼하고 앨런은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오기전 당시 일본의 유명 만화가의 사사를 받는데 후에 그가 유명한 삽화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계기가 됐다.
앨런의 동화집은 삽화가 더욱 돋보인다. 보통 30여페이지 분량의 책속에 수채화로 곱게 그려낸 그림이 20여장씩 들어 있다. 한때 성공한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노년에 접어들면서 옛 재능을 살려 그림이 들어있는 동화작가로 변신했다.
전시회중 웍샵은 ▲9월9일: 코믹, 만화등 삽화에 관한 웍샵. 어린이와 성인 모두 참가 가능 ▲11월4~12월9일 매주 토요일: 수채화의 묘미를 알려주는 수채화 강좌등이다.
주소 369 E. 1st St., LA (213)62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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