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일 아르헨 최남단서 출발
▶ 오지 섬 돌며 야생 동물 관찰해
▶ 23개국 150여명이 배 오르내려
▶ 승객들, 섬에 하선 주민과 식사도
한 달 넘게 남대서양을 항해 중이던 크루즈선 안에서 치명적인 호흡기 질환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벌써 3명이 사망했고, 그 외 확진자 및 감염 의심자는 5명에 달한다. 문제는 23개 국가에서 모인 사람들 150여 명이 그사이 배에서 오르내리면서 접촉자 수를 늘렸다는 데 있다. 한 달간 이 배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7일 세계보건기구(WHO)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네덜란드 국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호’는 4월 1일 아르헨티나 최남단 우수아이아를 출발해 6주간 남대서양을 횡단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남극 대륙 본토와 영국령 사우스조지아, 트리스탄다쿠냐 등 생태학적으로 다양성을 지닌 외딴 지역을 방문하는 것이 주목적이라 인당 약 2만9,000달러(약 4,2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에도 조류를 관찰하는 탐조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혼디우스호의 첫 며칠은 순조롭게 지나갔다. 승객들은 배 안에서 단체 강연을 듣거나 운동 수업에 참가하고, 서로 야생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 나갔다. 출발 닷새째인 지난달 5일 이들은 첫 번째 기항지인 영국령 사우스조지아섬에 도착했고, 이들은 섬에 들어가 펭귄과 물개, 코끼리물범 등의 동물을 관찰했다고 한다.
4월 11일, 한 네덜란드인 남성이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그는 6일부터 발열, 두통 등의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크루즈선 선장은 승객들에게 사망 사고 발생 소식을 알리면서 “전염성이 없어 배는 안전하다”고 말했다. 배는 계속 항해했고, WSJ에 따르면 승객들은 이후 함께 식사를 하는 등 전과 다름없이 지냈다.
승객들은 13일부터 사흘간 영국령 트리스탄다쿠냐에 내려 주민들과 접촉했다. 일부 승객은 현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열었고, 많은 승객이 펍에서 섬 주민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셨다. 일부 지역 공무원들은 직접 배에 오르기도 했고, 새로운 승객이 승선하기도 했다.
이들이 영국령 세인트헬레나에 상륙한 24일부터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첫 번째 사망자의 시신과 함께 배에서 내린 아내가 위장 질환 증상을 보였다. 그는 다음 날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행 비행기를 탔지만 상태가 악화돼 26일 요하네스버그의 응급실에서 사망했다. 사망한 부부는 크루즈선 탑승 전 칠레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에서 탐조 여행을 하고 온 것으로 조사됐다.
선박은 4월 26일부터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그사이 배 안에서는 한 영국인 남성이 발열과 호흡곤란, 폐렴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상태가 악화하면서 그는 27일 남아공으로 후송됐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28일에는 독일인 여성이 발열과 몸살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달 2일 선상에서 사망했다. 일부 승객들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선박회사 측은 ‘비상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승객들을 격리했으며, 2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이를 보고했다. 이날 남아공에서 실시된 실험실 검사 결과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에게서 한타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됐고, 일주일 전 사망한 여성에게서도 같은 바이러스를 확인했다.
5일 WHO는 한타바이러스의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배가 카보베르데에 정박하는 동안 선내 감염 의심 환자 3명이 네덜란드로 후송됐다. 현재 크루즈선은 아프리카 북서부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로 향하는 중이며, 10일 새벽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으로 한타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거의 없지만, 안데스 변종의 경우 사람 간 전염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WHO는 여러 국가와 협력해 크루즈선 승객은 물론 이들과 접촉 가능성이 있는 모두를 모니터링 중이다. 다만 기항지에서 내린 여행객들이 이미 여러 나라로 흩어져 항공기나 선박을 이용한 데다 한타바이러스 잠복기가 길어 감염 노출자 추적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다만 WHO는 ‘과도한 공포’를 경계했다. 마리아 밴커코브 WHO 전염병 및 팬데믹 관리 담당 국장 대행은 7일 “이것은 코로나19도 독감도 아니다”라며 “전염 양상이 매우 다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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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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