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 독일에 사는 친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부활절 주간에 두 주 동안 독일, 프랑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오래 전, 내가 홍콩에서 살던 시절, 아파트 같은 층에 살면서 인연을 맺게된 독일 여자, 동갑내기, 이름은 말리스. 그녀의 나라 독일은, 내게는 대학 시절부터 특별한 인연이 있는 나라였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언젠가 독일에서 살거라고 할 정도로, 독일은 언제나 제 2의 고향처럼 느껴졌다. 포근함은 환경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리라.
암튼 독일을 여러 번 방문할 때마다 친구, 말리스의 부모님(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언니, 조카, 온 친족들이 서로 정성을 다해 환대해 주었다. 독일 사람들은 한 번, 친구와 연을 맺으면 영원한 친구가 된다고한다. 그들은 구수하고, 따듯하며 상대방을 진지하게 존경해주며 시간 약속과 규율을 철저하게 지킨다. 그런데 어느덧 나는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내가 느낀 보통의 미국 사람들은 철저한 개인주의, 그리고 대인관계가 표면적이다(superficial). 입술로만 하는 lip service가 많고. 그래서 처음 미국에 유학온 외국 학생들은 이러한 개인적 vs 집단적인 문화차이로 격리감과 외로움을 겪는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돌아보건대, 전에 내가 미국 대학에서 노인학을 강의할 때, 얼마나 신나게 강의를 했던지. 그런데 이제 내 자신을 돌이켜보니, 당시 대학 강의 내용은 머리와 입술로만 풍요로웠던 것 같다. 이제 내가 몸소 겪어보니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3H(helpless/hopeless/hapless)이다. 오래 전에 친분이 있었던 독일에서 유명한 명문가의 아들, 큰 회사의 기업인, W의 이야기다. 외모도 멋있고, 매력적이고, 성공한 기업인으로 늘 매스컴에 나오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동안 오랜 세월, 서로가 연락없이 각자의 삶에서 열심히 살아 왔다. 그는 결혼해서 자녀도 키우며, 행복한 듯 보였다. 몇 달 전, 친구 말리스가 황급하게 뉴스를 전해 왔다. W가 머리에 권총을 대고 자살을 시도, 다행히 응급실로 실려가 치료를 받은 후, 잘 회복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전했다. 영화의 화면처럼 그의 모습이 펼쳐졌다. 부귀 명예를 누리며 살던 그가 얼마전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준 후, 그에게 평생 삶의 의미와 목적을 주었던 ‘일’이 없어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버려두고, 권총을 머리에 결단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외롭게, 남모르는 고민과 우울증의 늪속에서 번민했을까. 이번 여행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메세지를 나누고 싶었다. 그의 개인 연락처도 없어서 나름대로 연결을 시도해봤지만 안타깝게도 못 만나고 돌아왔다.
친구 말리스는 독일 남부, 프랑스의 국경 가까이 있는, 조용한 시골 도시, winery(와인 제조소) 지역에 살고 있다. 예수님을 기리는 고난주간에 우연히 그의 집 벽에 걸려있는 조용한 사진 액자가 나의 맘을 붙잡았다. 세월의 풍파를 겪어낸 현무암 기둥 언덕, 화산의 불기둥들이 하늘을 향해서 뿜어낸 수직의 주상 절리(Columnar Joint)는 바위결 하나 하나가 살아 숨쉬는 듯,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황량한 대지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듯, 강력한 생명력과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숭고함, 그리고 돌산 꼭대기 위로 하늘을 향해 외롭게 서있는 십자가. 그는 고독하지만, 권위있고,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변치않는 진리를 성스럽게 지켜온 표상이었다. 짙고 엷은 갈색의 사진에 비추어진 풍경은 역동적인 자연의 힘과 정적인 영성의 평화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곁에 서있는 마른 나무와 가냘픈 가지들의 증언과 침묵, 이 유명한 사진은, 말리스 남편의 형, Werner Baumann이 슈톨펜 성에서 1981년에 찍은 사진으로 십자가는 이 지역의 상징적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말리스와 남편이 이번 부활절에 예수를 영접했다. 삶을 포기하려했던 그 친구도, 그리고 역사의 상처를 헤쳐 나온 독일 민족들도 모두 그 외롭고, 추운 십자가를 바라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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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자 한미국가 조찬기도회 이사장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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