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승리 이후 서구는 스스로 만든 ‘꿈의 궁전’에 안주해 왔다. 자유 민주주의가 인류의 최종 목적지이며, 전 세계가 결국 미국식 모델을 따를 것이라는 오만한 확신이 그 성벽을 이뤘다. 하지만 지금 그 궁전의 벽면에 깊은 균열이 가고 있다.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를 통해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과 에릭 슈미트 ‘미국은 미래의 전쟁에 대비할 준비다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키쇼어 마흐부바니 교수가 ‘서방의 꿈의 궁전’을 통해 던진 경고는 명확하다. 서방의 위기는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사상적 오만'과 '시스템의 노후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미국과 서구는 지금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이라는 내부 질병을 앓고 있다. 현 정부와 궤를 같이하는 일각에서는 결정이 빠르고 일관된 권위주의 체제가 미래 전쟁과 패권 다툼에 더 효율적이라는 위험한 유혹에 흔들리는 듯하다.
단기적인 자원 동원에는 권위주의가 유리할지 모른다. 그러나 에릭 슈미트가 간파했듯, 미래 패권의 핵심인 '민간 혁신의 군사적 전이' 측면에서 권위주의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는다.
AI와 같은 파괴적 기술은 자유로운 데이터의 흐름과 '창의적 파괴'가 허용되는 민주적 토양에서만 지속적으로 싹틀 수 있다.
지금의 혼란은 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이 아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혁신을 거부해 온 '관료주의적 타성'이 문제일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개방형 플랫폼을 수호하고 강화하는 것은 단순한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서구에 '양날의 검'을 넘어선 '전략적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실상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이다.
이 과정에서 서구의 고비용 무기 체계가 러시아의 저비용 드론과 소모전술에 얼마나 무력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더 뼈아픈 것은 '글로벌 사우스'의 냉담한 시선이다. 인도, 브라질,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면서도 서방의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토의 동진이 전쟁을 불렀다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정상화했다. 서구는 이 전쟁을 통해 꿈의 궁전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져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중동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서 드러난 서구의 침묵과 이중 잣대는 글로벌 사우스뿐만 아니라 서구 내부에서조차 도덕적 불신을 낳고 있다. 이란에 대한 파상적인 공격은 군사적 억제력을 과시하려는 시도겠지만,
실상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전략적 자원 분산이라는 늪으로 미국을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민의 60%가 이란 공격을 지지하지 않고, 절반 이상이 미국이 더 위험해졌다고 느끼는 현실은 현재의 대외 정책이 국민적 공감대조차 얻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래서 2026년 중간 선거에서 미국인이 마주할 선택지는 단순한 정당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향수에 매몰될 것인가, 고통스러운 혁신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최선의 선택은 명확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과거 회귀적 구호나 기존 질서를 무조건 수호하려는 안일함에 소중한 표를 던지기 보다는 전 세계를 미국식으로 개조하겠다는 오만을 버리고, 다극화된 세상에서 실리를 챙길 유연함,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포퓰리즘 대신, 국가 위기 앞에 최소한의 합의를 이끌어낼 시스템 복원력, 관료주의 극복, 그리고 권위주의에 대한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는 의지에 투표를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인들이 '분노'가 아닌 냉철한 '생존 전략'에 투표할 때, 비로소 미국은 무너져가는 꿈의 궁전에서 걸어 나와 실제 세계의 주도권을 되찾을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식어의 정치인이 아니라, 썩어가는 현실을 과감히 도려낼 냉혹한 '집도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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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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