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충도(草蟲圖)
▶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풀과 곤충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오죽헌 화단에 여뀌꽃 피었는데
나팔꽃이 칭칭 감아 한 식구가 되려 하네
가는 줄기 굽어지니 여뀌꽃은 힘들어라
벌 한 마리 물잠자리 꽃향기에 날아들고
수레도 안 오는데 당랑(螳螂)은 다리 든다
겉보기엔 조용한데 쉴 새 없이 바쁜 꽃밭
조선 성리학(性理學)을 완성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강릉 출신으로서 문인이자 교육자이며 서화(書畵)에 뛰어났다. 남편 이원수(李元秀)는 학문과 관직보다 풍류를 즐기고 사임당의 예술 활동을 지원했지만 경제적 무능, 외도 등으로 사임당의 속을 썩였다. 사임당은 남편의 공부를 위해 10년간 별거하기로 하고 친정인 강릉 오죽헌(烏竹軒)에서 셋째 아들인 율곡을 직접 가르치고 꽃, 나비, 곤충, 새, 포도 등을 그리며 살았다.
사임당이 남긴 초충도를 비롯한 많은 그림에는 낙관을 찍은 것이 거의 없어 그가 그린 그림을 확인하기 힘들다. 이는 당시 여성의 재능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경계했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사후 150년이 지나 문인 동계(東谿) 조귀명(趙龜命 1693-1737)은 율곡과 신사임당이 각각 유림과 예술에서 세상에 이름이 났다고 기록하였으며, 야족당(也足堂) 어숙권(魚淑權, 1510-1573)은 당대의 민간 설화, 역사적 일화, 야사 등을 모아 저술한 <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 사임당이 그린 묵포도화와 산수화가 안견에게 버금갈 정도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신사임당이 그린 산수화는 별로 전해지지 않지만, 오죽헌의 화단에서 관찰되는 곤충과 꽃을 그린 아름답고 섬세한 초충도가 많이 남아있다. 초충도는 길상화(吉祥畵)로서 곤충과 식물이 상징하는 다산(多産), 장수, 부귀 등의 의미를 담은 그림이다. 그러나 사임당의 초충도는 이들 미물(微物) 하나하나의 생명을 존중하는 시선이 두드러진다.
위의 그림에서는 어느 한가한 여름날, 오죽헌 화단에 핀 여뀌꽃을 중심으로 펼쳐진 정경을 그렸다. 붉은 여뀌꽃 줄기를 나팔꽃이 칭칭 감으며 올라가고 있고, 벌과 물잠자리가 꽃향기에 이끌려 날아든다. 또한 땅에는 앞발을 들고 기어가는 사마귀를 그렸다. 이는 춘추 시대 제(齊)나라의 장공(莊公)이 수레를 타고 가는 중에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향해 앞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만일 저것이 사람이라면 응당 무서운 용사일 것이다”라고 말한 고사를 생각나게 하는데, 이 말은 자신의 힘을 모르고 강한 상대에게 대항하는 무모한 행동을 비유하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었다. 이처럼 조용하면서도 바쁜 꽃밭 이면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명들의 움직임을 사임당은 따뜻한 색채와 간결한 구도로 세밀하게 그렸다.
2009년 한국은행은 5만 원권 지폐에 신사임당의 초상을 넣기로 했다. 그러자 당시 한국 여성계는 신사임당이 ‘현모양처’, ‘가정’이라는 전통적인 한국의 보수적인 여성상의 틀 안에 갇힌 인물이라 하여 반대했고, 논란이 확대되었다. 그렇다고 전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다른 대표적인 여성을 제시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한국인들은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권을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는 액면가가 높은 점도 있지만 여성으로서 신사임당만큼 시, 화, 서, 문(文),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전인적인 역량을 보여준 여성이 신사임당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들도 세뱃돈이나 용돈으로 5만 원권을 좋아한다는데, 이는 돈의 액수가 커서라기 보다는 돈에 그려진 신사임당의 다정하고 품위가 있으면서도 어쩐지 근엄한 모습을 그들도 알아보기 때문일 것이라 필자는 생각하고 싶다. joseonky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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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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