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 안견(安堅, 조선 전기 세종대왕 시대) (꿈속에 몽유도원을 거닐다) 일본 덴리대(千里大學) 소장
안평대군 꿈속에서 고봉심곡(高峯深谷) 헤매는데
산관야복(山冠野服) 노인이 도원 입구 알려주네
인수(仁叟)와 함께 가니 복사꽃은 만발한데
도원 속의 선궁(仙宮)에는 인적조차 없구나
저 높은 계곡에선 폭포수 쏟아지고
무너진 섬돌들은 오랜 세월 흔적일세
어느새 정부(貞父)와 범옹(泛翁)이 함께 하니
다 함께 신선되어 구름 타고 놀아볼까
현동자(玄洞子) 안견(安堅)은 세종대왕 때 도화서원으로 산수화, 초상화, 사군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 조선 전기 최고의 화가였다.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은 안견의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중국에서 구해온 여러 화첩과 그림을 안견에게 보여주어 그가 화풍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1447년 4월, 안평대군은 어느 날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찾아가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안견에게 이야기하며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청하였다. 안견은 3일 만에 수묵담채로 길고 웅대한 화폭을 완성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조선 회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이다. 어쩌면 안평대군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읽고 이에 심취하여 가까운 문사*들과 함께 그가 그리는 이상향에 가는 꿈을 꾼 것 같다.
이 그림의 왼쪽은 현실 세계이고 오른쪽은 도화향(桃花鄕)인데 그 사이에 험난한 산과 계곡이 있다. 맨 왼쪽은 눈높이에서 그린 평원법(平遠法), 중간의 험준한 산과 폭포가 있는 곳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고원법(高遠法), 금빛 같은 햇빛이 내리비치는 오른쪽의 도화원은 위에서 내려다본 부감법(俯瞰法)을 사용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끌어냈다. 안견은 먹의 농담(濃淡), 산수화 본연의 필묵의 아름다움, 조심스럽고 섬세한 필치로 웅대한 구도의 이 그림을 완성하였다.
이 그림을 본 안평대군은 자신이 꾼 꿈과 비슷하다며 크게 감탄하였다. 이 작품에는 안평대군의 서문을 비롯해 신숙주, 박팽년, 성삼문 김종서 등 23명의 석유(碩儒)와 고승의 찬문(撰文)이 더해져 문학적 서예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안평대군은 다음의 시를 남겨 이 그림이 오래오래 전해지길 바랐다.
世間何處夢桃源(세간하처몽도원)
이 세상 어느 곳을 무릉도원이라 꿈꾸었던가
野服山冠尙宛然(야복상관상완연)
은자의 옷차림새는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著畵看來定好事(저화간래정호사)
그림으로 그려놓고 보니 참으로 좋도다
自多千載擬相傳(자다천재의상전)
천년을 두고 전할 만하지 아니한가
이 그림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약탈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수백년 동안 여러 소장자를 거치다가 현재는 덴리대학교(天理大學)가 매입하여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인수(仁叟)-박팽년, 정부(貞父)-최항,
범옹(泛翁)-신숙주
joseonkyc@gmail.com
<
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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