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폭염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에서도 폭우가 지나간 뒤 푹푹 찌는 찜통더위가 연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작년 여름, 서울에 살면서 밖에 나가면 머리가 타는 듯한 열기에 얼굴과 목덜미로 땀이 뚝뚝 떨어지는 극혐 더위를 체험했다. 횡단보도 앞 길가 곳곳에 햇볕을 가리는 큰 파라솔이 세워져 있고 버스 정류장마다 ‘무더위 쉼터’가 있지만 뜨거운 햇볕을 막으려면 외출시 양산부터 챙겨야 했다.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필수품’ 이라면서 양산 선물을 두 군데서 받기도 했다.
그때, 광화문의 교보빌딩 1층 까페 유리창 너머로 양산을 쓰고 가는 남자들을 보았다. 흰 셔츠에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검정색과 회색의 양산을 들고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올해도 광화문과 여의도,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양산 든 남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햇볕 가리는데 성별이 무슨 상관, 그까짓 남들 시선이 뭐라고’ 하는 듯 양산 쓴 여자들과 함께 섞여 보무당당하게 걸어가는 그들, 맞다. 불타는 햇볕아래 머리는 뜨겁고 눈 뜨기가 힘들 정도인데 양산을 쓰면 일단 한결 시원해진다.
눈 뜨기 편하지, 자외선으로 인한 기미, 색소침착 막아주지, 조기 노화와 탈모예방도 한다는데 왜 안쓰겠는가. 양산을 쓰면 체감온도부터 뚝 떨어진다.
일본은 이번 여름 폭염 대책으로 남성들의 양산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2018년 환경성과 지방자치 단체들이 나서서 남성 양산 쓰기 운동을 시작하여 2021년 ‘모든 남성이 양산을 갖자’는 슬로건으로 남성전용 양산이 적극생산 되었다.
한국 국립국어원은 2021년 양산의 사전적 의미를 바꾸었다. 기존 양산이란 단어 설명에 ‘주로, 여성들이 볕을 가리기 위해 쓰는 우산 모양의 큰 물건’에서 ‘주로, 여성들이’ 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올해 폭염이 심해지자 수도권 기상청은 서울시와 경기도 교육청에 ‘학생들의 하교시 양산 사용을 지도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기상청이 양산 사용을 공식 권장한 것이다.
지난 19일 뉴욕포스트는 ‘기록적 폭염에 많은 미국인이 햇빛 차단용 양산을 찾는다’며 여름철 필수아이템으로 양산을 들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익숙한 양산 문화가 미국까지 진출한 것이다.
본인도 원래부터 양산을 즐겨 쓰는데 아이들은 양산을 쓴 나와 멀리 떨어져 걸으려고 했다. 중국 할머니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맨하탄 차이나타운이나 플러싱의 중국인 거리에는 확실히 양산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퀸즈나 맨하탄 한인밀집지역에서는 곱게 옷 입은 한인 할머니들이 주로 꽃무늬나 화사한 양산을 쓰고 간다.
젊은이들은 불볕 아래 선글래스만 쓰지 양산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한인남성들은 언감생심, 양산을 쓸 마음을 품지못한다. 때로 서울보다 뉴욕이 더 보수적이다.
마스크도 그렇다. 코로나19때는 인종을 막론하고 누구나 마스크를 썼지만 코로나 이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 폭염의 날씨에 지하철을 탈 때면 역한 냄새가 코로 들어와 마스크를 쓰고 싶다.
그런데 지난 6월 마스크를 쓰고 반유대주의 행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캐시 호쿨 뉴욕 주지사는 ‘위법이나 위해 행위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위해 마스크를 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마스크 착용 금지 방안을 내놓았다.
지난 8일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은 ‘팬데믹 이전과 같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은 불법으로 간주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시정부 차원에서 관련 조례안을 발의하겠다고 동조했다. 현재 뉴욕시 의회에 유사 조례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뉴욕시민자유연맹은 ‘마스크 착용이 범죄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유색인종에게 부당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뉴욕에서는 마스크를 썼다가 잘못 범죄자 의심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지하철을 탈 때면 궁여지책으로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다. 뉴욕에 살다 보니 양산과 마스크를 마음대로 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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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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