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카 강과 숲, 고성이 어우러진 낭만
네카 강을 따라 펼쳐진 하이델베르크는 숲과 고성이 어우러진 독일의 가장 낭만적인 도시다. 오래된 거리와 붉은 지붕, 폐허가 된 성채가 강 건너 숲속에 걸린 풍경은 누구라도 발길을 멈추게 한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고속열차로 1시간 거리. 하루를 머물러도 좋고, 이틀을 머문다면 더 깊은 풍경이 보일 것이다. 1386년에 문을 연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도 이곳에 있다. 막스 베버와 헬무트 콜도 이곳에서 공부했고, 지금까지 33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지성의 도시이지만, 내게 하이델베르크는 책이 아니라 영화로 먼저 다가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
1954년, 이곳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이 있다. 테너 마리오 란자의 목소리와 배우 에드먼드 퍼덤의 연기가 어우러진 낭만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그 밝은 장면 뒤에는 슬픈 현실이 숨어 있었다. 체중 문제로 할리우드에서 밀려난 란자는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라 스칼라 무대를 앞두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다섯 달 뒤, 그의 아내도 그를 따라갔다. 그들의 영화 같은 삶은 지금도 하이델베르크의 돌길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시간의 흔적이 전하는 아름다움
하이델베르크 성을 처음 마주했을 때 떠오른 것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무너진 역사의 흔적이었다. 한때 독일 르네상스 궁전 중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 이곳은 17세기 말 프랑스군의 침공으로 크게 파괴되었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전쟁의 폐허를 복원하지 않았다. 상처마저 아름답다고 여긴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이곳을 “낭만적 폐허”라 부르며 무너진 모습 그대로 사랑했다. 괴테는 이 성을 &독일적 아름다움의 상징&이라 했다. 오늘날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을 함께 이끄는 동반자가 되었다.
철학자의 길, 오르막에서 배우는 삶
점심 무렵, 다리 곁 작은 한식당에서 제육볶음과 된장찌개를 먹었다. 혀끝보다 마음이 먼저 고향을 떠올렸다. 식사를 마치고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너면 철학자의 길이 이어진다. &뱀의 길&이라 불리는 구불구불한 오르막. 20분쯤 올라서니 성과 마을, 강과 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개 속 폐허의 성이 더욱 고요하게 다가왔다. 철학자의 길은 왕복 1시간 남짓 걸리며,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
청춘의 흔적이 남은 학생감옥
하이델베르크 대학 안의 학생감옥은 예상과 달랐다. 좁고 어두운 공간인데도 어딘가 자유로웠다. 벽을 가득 채운 자화상과 시, 장난스러운 낙서들은 죄의 흔적이 아니라 청춘의 흔적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여기에 있었다." 그 순간, 감옥은 예술이 되고, 도시는 철학이 되었다. 폐허와 자유, 역사와 청춘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도시, 그것이 하이델베르크다.
말 없는 공간이 전하는 이야기
마르크트 광장에 이르렀다. 시 청사와 성령교회가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서 있었다. 하나는 권위, 다른 하나는 믿음. 성령교회 안에 앉아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조용한 공간이 사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도보다 더 깊은 침묵, 그것이 믿음이고 철학이며 삶이다. 광장에는 카페와 식당이 모여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빨간 우산 아래 남은 한 장면
비가 그친 저녁, 다시 다리 위를 걸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서 빨간 우산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우산을 들게 한 것도 나였고, 지켜보는 것도 나였다. 사랑이란 결국 말보다 기억보다, 마음속에 조용히 남는 한 장면이다. 도시는 스쳐가고 사람도 떠나지만, 끝내 남는 건 그런 순간들이다. 지금도 하이델베르크의 ‘붉은 황소' 술집에서는 마리오 란자의 노래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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