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시 중심부에 있는 ‘잠룽 보로스’는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세계적 현대미술관이다. 하지만 육중한 콘크리트 외양, 두께 2m에 이르는 벽 등은 잠룽 보로스가 미술관임을 의심하게 한다. 본래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2년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으로 지어진 나치의 방공호(벙커)로 2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피신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후 광고 업계에서 성공한 사업가 크리스티안 보로스가 2008년에 이곳을 사들여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방공호는 포격이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시설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공습을 당한 영국 정부가 1930년대에 직접 설치하거나 장려하면서 생겨났다. 방공호가 대피 상황에서 생존 확률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게 되자 급속히 확산됐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집권한 후 영국보다 더 튼튼하게 독일 전역에 민간인용·군사용으로 방공호를 지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이 끝난 후 쓸모가 줄어든 세계 각지의 방공호들은 저장창고·테크노클럽·공공시설·피서지 등으로 활용됐다. 독일의 경우 냉전 때 2000개에 육박했던 민간 대피소가 580개로 줄었다.
■독일이 요즘 방공호를 다시 확충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랄프 티슬러 독일연방국민보호재난지원청장은 4년 동안 100억 유로(약 15조 5000억 원)를 들여 터널·지하철역·지하주차장 등을 개조해 대피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한 러시아가 4년 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침공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지역에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 등으로 불안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권위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진영 간의 블록화가 가속화하면서 군비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방공호를 확충하는 독일처럼 우리도 한미 동맹 강화와 자주국방 실현에 적극 나서야 한다. ‘평화를 지키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격언을 되새겨야 할 때다.
<오현환 /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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