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해(The Sea of Ice)’는 1824년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 풍경화다. 극지의 날카로운 얼음 파편들에 의해 난파되는 범선이 그 주제다. 침몰 직전의 범선은 당시 오스트리아 메테르니히의 전횡적인 치하에서 겪었던 독일 시민의 고통을 상징하지만 그 비극적인 정서에는 어린 시절 자신의 실수로 빙판에서 익사했던 동생에 대한 기억도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비극과 절망이 이 그림의 최종적인 주제는 아니다. 프리드리히는 전경의 피라미드 형태로 솟아오른 얼음 파편들 위로 밝은 빛이 내려앉도록 했다. 그 빛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희망을 의미한다. 원경에는 이 비극에 어울리지 않는 고요한 평화와 소망의 기운이 감돈다.
정체성의 혼란이 큰 시대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서 프리드리히의 난파선을 느끼고는 한다. 그 쇄도하는 불행감과 상실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해도 기꺼이 곁을 내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따듯한 위로와 포용의 결핍이 있다. 이를테면 자연과 같은.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인간은 인격을 지닌 존재지만 동시에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다. 자신을 뽐내고 과시하느라 자연과의 관계를 경시할 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자신의 영혼의 몫으로 되돌아온다. 오늘날처럼 기술적으로 진보된 시대에 왜 우울증과 불면증, 온갖 약물과 오락 중독이 난무하는가의 문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난해한 것이 아니다. 얻은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라는 것. 영웅적인 기술 놀이의 질주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이름 모를 들꽃의 아름다움 앞에 멈춰 서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긴 호흡으로 기술 문명이 이제껏 도달한 적도 없고 도달할 수도 없는 세계를 들이마시기!
<심상용 서울대학교 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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