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대다수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잘 모르고 있다. 건국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이승만 박사는 왕의 나라를 백성에게 돌려준 공(功)이 있다. 더 소중한 일은 그가 공산주의의 대척점에서 자유를 신봉하며 ‘자유민주주의 뿌리’로 각인되었다는 점이다.
1954년 미국의 국빈 방문(State Visit) 때 워싱턴에 도착한 이승만 대통령이 워싱턴 정치인들을 향하여 ‘워싱턴 겁쟁이들(Cold feet)’이라며 일갈했다. 자유(Freedom)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임을 역설한 것이다.
이승만 외교의 분수령은 무엇보다 대륙문명권에서 해양문명권으로의 변화였다. 문명사적인 대전환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사건이었고 동맹문화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줬다는 사실이다.
이승만의 대미외교는 ‘대등한 외교’가 축을 이뤘으며, ‘한미동맹’의 주역은 이승만이었다. 약소국이라는 약점을 딛고 미국 측을 설득하며, 움츠러들거나 물러섬 없이 담대한 전략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성사시켰다.
1954년 7월28일 이승만 대통령이 미 상하원 양원 합동회의장에서 의회 연설에 나서자 조셉 마틴 주니어 하원의장이 이승만 대통령을 소개했다. “미국 국민들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자유를 위한 불굴의 투쟁가’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의회연설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기립박수를 포함 모두 33회의 박수를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때 함께 싸운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의회연설에서는 미국의 어머니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한미인사들이 함께 한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행사에서는 이 대통령의 눈물로 숙연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면서 이승만 지우기가 멈췄다. 과거에는 좌편향된 교육에다 정권의 무관심으로 이승만 지우기는 끝간 데가 없었다. 국민들은 권력 이동과 더불어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국론분열의 심각함을 체감하고 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자유민주주의 뿌리인 이승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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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봉 /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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