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반 고장·시행착오 ‘악전고투’
▶ 워터히터에 물이 줄줄 각종 라이트 끊겨 깜깜‥ 워터메이커 성공 환호
담대한 꿈을 안고 태평양 횡단 여정을 힘차게 출행한 뒤 하루가 저물면서 돛 너머 태평양 수평선으로 해가 지는 노을이 장관이다. [박상희 대원 촬영]
“120년 전 담대한 이민의 첫 발을 내디뎠던 이민 선조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망망대해 태평양을 요트로 건너는 도전은 돛 하나에 의지해 때론 파도와 때론 고독과 싸운, 하루하루가 생명을 건 사투였습니다.”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아 태평양 요트 횡단 대장정에 나선 4인의 한인 원정대가 한달 간의 1차 대항해를 마친 소감이다. 이들은 거센 바람과 세찬 파도, 그리고 무풍지대를 뚫고 딱 31일만에 LA에서 하와이까지 항해를 무사히 마쳤다. 항해 중 남진우 대장이 꼼꼼히 작성한 항해일지와 하와이 도착 후 대원들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통해 넓고 넓은 태평양에 자신들만의 길을 내며 용감하게 전진한 원정대의 생생한 항해 과정을 일지 형식으로 소개한다.
지난 4월3일 오전 9시 남진우, 도 유, 조셉 장, 박상희 등 우리 4명의 원정대를 실은 37피트짜리 대양 항해용 요트 ‘이그나텔라’호가 호눌롤루의 알라 와이 요트 정박장으로 접근하자 저멀리 환영 나온 하와이 한인회 관계자들과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극기를 힘차게 흔드는 그들의 응원 함성에 우리 대원들도 손을 들어 화답했다. 총 항해거리 3,500여마일에 이르는 1차 항해를 무사히 마쳤구나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 온다. 한달 간에 걸친 고된 항해 과정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3월4일 토요일.
석달 동안 철저히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출발 당일까지 몇가지를 손보지 못했다. 오후 3시쯤 가족과 친지, 취재진의 환송을 받으며 마리나 델 레이를 힘차게 출항했는데 ‘아뿔싸’ 얼마 못가서 새로 설치한 워터히터 호스에서 물이 조금씩 새어 나온다.
게다가 남가주 전역이 한창 우기였던지라 바다가 제법 사나웠다. 요트 경험이 별로 없는 대원들이 초반부터 컨디션 난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마리나 델 레이 남쪽에 위치한 롱비치에 내려 워터히터와 전기배선을 손보기로 했다.
롱비치 요트 정박장에서 이틀을 보내고 오전 10시 다시 출발했다. 이번에는 항해에 반드시 필요한 네비게이션 라이트와 앵커 라이트, 러닝 라이트가 고장이 났다. 어쩔 수 없이 밤늦게 샌디에고 미션베이 요트 정박장 인근 바다에 앵커를 내렸다.
3월8일 수요일. 계속되는 배 수리와 정비로 몸이 천근만근이다. 말썽을 부리던 AIS(선박자동식별시스템)와 VHF(초단파무선통신자비) 파워를 연결했다. 연안 정박시 필요한 앵커 라이트와 주간 항해에 필요한 러닝 라이트를 수리하려고 했지만 연결선이 어딘가 끊어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칠흑같은 밤엔 바다와 하늘 구분 안돼” 다행히 네비게이션 라이트는 제대로 작동하기에 야간 항해를 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3월9일 오전 11시 샌디에고를 출항했다. 항해에서 1노트는 시간당 1.15마일 정도의 속도를 의미한다. 10노트 이상 바람이 불 때는 돛을 펼치고 10노트 이하 일 때는 엔진을 켜 바하 캘라포니아 엔시나다에서 님서쪽에 위치한 과달루페 섬을 향해 남하했다.
항해 도중 2명씩 한 조가 되어 번갈아 가며 야간 불침번을 서야 했다. 밤에는 사방천지 칠흑같은 어둠에 바다와 하늘이 구분되지 않는다.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 2시간 작업 끝에 호스 안에 종이 뭉치와 석회질이 쌓여져 호스관이 좁아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손을 봤다.
밤 항해는 힘들기만 하다. 바람이 좋아도 배가 빨리 나가지 못한다. 불침번을 서는 대원들이 어느 정도 스스로 배를 다룰 수 있을 때까지 느리지만 안전 항해를 하기로 결심했다. 타임라인이 한시간 빨라져 오전 7시가 8시로 변경됐다.
현재 GPS 상 위치는 북위 27도 서경 119도를 가르키고 있다. 북위 24도 지점까지 내려가 서쪽으로 항로를 변경할 계획이다.
3월13일. 바람이 불다가 어느덧 멈춰버린다. 항해 중에 돛을 내리고 올리는 것은 귀찮은 일이면서도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더욱이 칠흑같은 밤에 흔들리는 갑판에서 작업해야 하니 말이다.
오전 11시 현재 이그나텔라는 북위 25도 서경 120도 지점에 와 있다. 점차 항로를 남서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돌려 나가고 있다. 바람은 12~13노트 속도로 불고, 배는 5노트 속도로 진행 중이다.
바람을 더 잘 받기 위해 스피네커 폴(spinnaker pole)을 돛의 헤드 부분에 장착했다. 처음 사용해 보는 것이라 대원들과 죄충우돌하며 실패를 거듭한 끝에 길고 무거운 파이프를 돛에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이젠 출항 전 채워 놓은 물탱크가 바닥이 날 시간이다. 처음으로 이마트 아메리카가 기증한 워터메이커를 작동시켰다. 20분 정도 가동시켜 처음 나온 물을 버리고 그 후에 나오는 물 맛을 봤더니 소금기가 없는 맹물 맛이었다. 이제 물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대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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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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