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시작했던 그 첫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 어리고 순수했을 때 가졌던 그 마음을 나이를 먹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간직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누가 하느님의 사제가 된다는 거룩한 뜻을 세우면서 뭐 다른 욕심이 있었겠는가? 내가 사제가 되어 하느님 앞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모든 것을 바치고 신자들을 위해 살아간다고 뜻을 세우지 않았겠는가? 서울신학교 교가가 티끌 같은 세상 진세를 버렸노라 내 몸마저 버렸노라 이름도 버리고 뭐도 버리고 다 버리고 주님만을 따르겠다고 했다. 어린 신학생시절 나는 버린다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 뜻도 모르고 신나게 불렀다.
아무도 처음부터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자리욕심, 남들보다 잘나고 싶은 명예심, 돈 욕심에 돈을 착복하고 자기 뱃속을 차린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동료를 시기 질투하고 뒤에서 험담하고 공격하고 나만 맞고 나만 잘났다는 교만한 마음도 없었다.
처음에 우리는 다 순수했다. 나도 그랬다. 처음에 사제로 서품된 지 몇 해도 안 된 초짜 신부로 엠이(ME) 주말을 들어갔다. 주말 중 발표부부들이 재무상태가 안 좋다며 여기저기 지출할 경비가 모자란다고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좀 지나서 나에게 수고비로 사례금이 든 봉투를 건네준다. 나는 돈이 모자란다면서요 하고 돈 봉투를 거절했는데 계속 받으라고 종용하는 그 부부에게 결국은 화를 낸 기억이 있다. 돈이 모자란다면서 왜 나에게 돈을 주냐고. 안 받겠다는데도 왜 자꾸만 주냐고 화를 낸 것이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지나 그 옛날의 순수하고 착한 신부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내 스스로도 참 기가 막힌다. 왜 준다는 돈도 싫다고 했냐 말이다. 처음의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은 다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잔머리를 굴리면서 주판알을 튕기며 뭐가 이익이고 뭐가 손해인지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살아온 해가 많아질수록 더 맑고 깨끗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생전 나에게 보내주신 책이 있다.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롭게’라는 책이다. 천주교신부에게 스님의 책을 보내주시는 아버지 얄궂음에 그 책을 볼 때마다 혼자서 빙긋이 웃어본다. 내 사제직이 맑고 향기롭고 축복 속에 은총으로 피어날 것인가 아니면 욕심과 교만, 더러움으로 썩은 냄새가 가득찰 것인가 바로 그것이 문제로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되돌아가자.
<
조민현 팰팍 성 미카엘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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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빗물을 입벌려 받아먹으려했던 기억이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내리는 비를 입벌려 받아 먹으려는 애들은 없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질이 다가 아니다' 하면서도 물욕에 사로잡히는것은 어쩔수없는 시대적 변화일것 같기도합니다만, 요즘은 어찌된판인지 내밥먹어주는 지인에게 '내밥 먹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하는 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