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있으면 내 생일이다. 우리 딸은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해 주고 싶다며 한 달 전부터 뭘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란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생일이 되었다고 하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 그저 멀리 있는 아들네 식구까지 한 상에 둘러앉아 밥 한 끼 먹을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행복이겠지.... 아이들이 출가하면 그런 소소한 바람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을 안다. 그저 마음에 담아둘 뿐이다.
딸이 이른 생일 선물이라며 예쁜 스웨터를 사다 주었는데, 잘 맞지 않아 바쁜 아이와 모처럼 집을 나섰다. 오랜만의 쇼핑이 낯설기도 했지만 오가는 길 딸과의 시간은 즐겁기만 했다. 평소엔 손주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대화할 시간이 없었는데 둘 만의 나들이는 밀린 이야기들을 풀어내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들을 돌봐 준다고 고마워하며 일년 내내 생일처럼 챙겨주는 딸에게 선물을 받자니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얘, 해 준 것도 없이 생일이라고 이렇게 받는 게 너무 염치가 없다. 너희가 아이들에게 하는 걸 보면 우리는 정말 부족한 게 많았어. 돌아보면 더 잘 해 주지 못해 미안하고, 이민 온 지 얼마 안돼서 미국을 잘 몰랐던 게 너무 미안해. 그런데 나이 들어 이렇게 받기만 해서 엄마 맘이 좀 그래...” 딸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딸이 대답한다. “그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어. 우리가 최고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엄마, 아빠가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건 알아. 그럼 됐지. 시대가 다르잖아. 이젠 우리가 부모님 챙기고 엄마는 받는 세대가 된 거지. 미안해 하지 말고 누리면 돼.” 딸의 말에 목이 메어 눈물을 삼켰다.
이 세상 수많은 여성들은 아들, 딸을 낳고, 엄마가 되어 사랑을 주다가 때가 되면 이렇게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해산의 고통을 평생 기억하는 엄마를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주는 기쁨, 행복, 추억들은 엄마로 일생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산의 고통을 지울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는 해산의 고통이 아닌 기쁨을 누리는 엄마로 태어났음이 가장 큰 행복이고, 그런 행복을 알게 해 준 아이들이 또한 가장 큰 선물이다. 아마도 모든 엄마들의 심정이 이와 같지 않을까.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이 곁에 계신다. 늘 주고도 더 주지 못해 팔십이 넘은 연세에도 반찬을 가져다 주시는 엄마. 생일이라면 태어난 나보다 낳느라 고생하신 엄마가 축하 받으셔야 하는 날이다. 이번 생일엔 두 분을 모시고 맛있는 식사라도 대접해 드려야겠다. 엄마, 아버지. 낳아 주셔서 감사해요.
<
양주옥(피아니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