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후 초산 가능성 높은 연령 26~30세. 80년대 후반생보다 15만명 더 많아져…남녀 출산 기피 이유 1위는 ‘경제 문제’
‘삶의 질’ 보장하는 고용 환경 마련돼야…젠더 중심으로 출산 정책 재점검 필요
▶ 저출산 예산, 전시 행정으로 소비, 16년 만에 ‘인센티브 강화’ 움직임… ‘육아는 여성 몫’ 고정관념 큰 문제, 일-양육 병행 가능한 구조적 개선을
280조 썼지만 작아진 ‘아기 울음’…‘가부장 문화’ 헤어질 결심부터다시 ‘90년대생이 온다’. 수년 전부터 회사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수직적인 조 직 문화에 변화를 일으키는‘새로운 세 대’로 부상한 1990년대생. 이제는 출산율 전 세계 꼴찌 탈출을 위한 최전선 예비 부모로 조명받고 있다. 유독 인구가 다른 연령대보다 많아 점점 굳어가는 저 출생을 반전시킬 마지막 희망, 출생 전 쟁의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인구 많은 90년대생, 저출생 좌우
통계청에 따르면 1980년 86만2,835명이었던 출생아는 1984년 64만4,793명으로 4년 만에 22만 명 가까이 떨어졌다.
1990년(64만9,738명)까지 60만 명 대 중반을 기록하며 줄어들기만 하던 출생아는 1991년 70만9,275명으로 확 뛰었다. 이후 출생아 반등은 저출생이 본격 시작된 2001년 직전까지 이어졌다.
1990년대 출산율은 정부가 1980년대에 강하게 밀어붙였던 산아제한 정책을 점점 풀면서 치솟았다. 그 결과 1980~1990년대 태어난 아이가 어른이 된 지금, 이들은 저출생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
지난해 1980년대 후반생으로 초산 연령대인 31~35세 여성 인구는 145만 4,095명인 반면 그보다 어린 26~30세(1990년대 초·중반생) 여성 인구는 160만9,343명이다.
인구만 놓고 보면 1990년대 초·중반생이 초산 평균 연령인 32.6세(2021년 기준)에 도달하는 5, 6년 사이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는 연간 출생아 수(2021년 26만600명)를 반등시킬 가능성도 크다.
인구학자들은 정부가 1990년대생이 주로 아이를 낳을 시기인 향후 5년을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 조한다. 인구가 많은 만큼 강력한 저출 생 대책의 명분과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이기 때문이다.
■ ‘82년생 김지영’ 향한 정책서 전환 필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7월 실시한 ‘청 년의 연애, 결혼, 성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1990년대생이 원하는 저출생 대책을 가늠할 수 있다.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사유로 여자(49.1%), 남자(66.4%) 모두 경제적 이유를 들었다.
꼭 수도권 내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라 지방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근무해도 ‘삶의 질’이 보장돼야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꿀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1990년대생의 출산을 유도하려면 엘리트뿐만아니라 모든 인재의 가치를 높이는 전원 활약사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출산을 원하지 않는 두 번째 사유로 남자는 ‘아이를 잘 키우기 어려운 사회 환경’ 이라고 답한 반면, 여자는 ‘내 삶을 희생하고 싶지 않음’을 꼽은 점도 눈에 띈다. 육아휴직 등 자녀 양육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인식되지만 승진 등 조직 내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 분위기가 출산 기피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발표한 ‘2022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에서 자녀가 있는 여성이 정규직 말고 비정규직으로 취직할 가능성은 남성의 3배”라고 분석했다.
1990년대생에 어울리는 정책의 전환 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저출산 정책은 과거 어린이집 확충 등 보육 중심에서 문재인 정부 시기 남성 육아휴직 장려 등 남녀 동등한 역할을 강조하는 젠더 중심으로 이동했다”며 “젠더 중심 정책만 해도 소위 ‘82년생 김지영’을 위한 것이었는데 MZ세대인 1990년대생에게 그대로 먹힐지 대책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 대응 정책의 요구도 및 우선 순위 분석: MZ세대 인식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쓴 박미경 안양대 조교수는 “MZ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으로 여기는 경향이 기존 세대보다 강하다”며 “정부가 결혼, 출산을 무조건 장려하는 정책으로 접근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합계출산율(출산율) 0.75명’
임신할 수 있는 여성 네 명에게서 겨우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는 뜻이다. 16년간 280조 원 규모의 예산을 쏟아부은 결과가 고작 저것이냐고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숨을 쉬며 가리킨, 올 상반기 한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들인 돈은 조 단위로 치솟는데, 바닥(0)을 향해 곤두박질 치는 출생률에는 날개가 돋지 않는다.
이제는 ‘백약이 무 효’라는 판단에서였을까. “기존 정책이 출산율 높이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반성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지적은 ‘저출 생’ 대응 포기 시사다. 바야흐로 ‘적응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저출생 대책, 충분했을까
물론 저출생 대책은 실패다. 꾸준히 줄어 2005년 1.09명까지 추락했던 출산율은 예산이 투입되자 이듬해 당장 1.13명으로 반등하더니, 전반적 회복 기조 속에 2012년 1.30명까지 올랐다.
턱걸이로 ‘초저출산’ 상태를 면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가 정점이었다. 다시 내리막을 탄 출산율은 2018년 기어이 0점대에 진입했고, 가속이 붙었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만들어졌고, 지난해 8월 공개된 국회예산 정책처(예정처) 보고서에 따르면, 다음해 곧바로 2조1,000억 원의 정부 예산이 저출생 대응 명목으로 편성됐다.
2013년 10조 원을 가뿐히 넘어선 저출산 예산(14조4,000억 원)은 지난해 46조7,000억 원까지 커졌다. 16년간 잡힌 예산을 합치면 271조9,000억 원이나 된다.
‘헛돈’이었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다. 마구잡이로 허투루 썼을 수 있다. 급한 마음에 주먹구구식으로 헤프게 퍼부은 것이다. 실제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았다는 평가다.
가령, 청년과 신혼부부 대상 주거 지원을 위해 기껏 예산을 들여 공급한 임대주택 가운데 상당수가 빈집으로 남은 것은 정부가 허술 하게 수요를 어림짐작 하는 바람에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져 버린 사례라는 게 예정처 분석이다. 아니면 ‘불가항력’일 개연성이다. 저출생은 못 막는다는 교훈을 정말 비싸게 얻은 셈이다.
■지금이라도 다양한 방안 고민
그러면 이제라도 출산과 육아 인센티브 강화에 돈을 몰아넣으면 되는 것일까. 실제 그런 움직임이 있다. 윤 정부가 내년 도입 목표로 추진 중인 ‘부모 급여’다. 만 0, 1세 영아 양육자에게 월 최대 100만 원을 현금으로 주겠다는 구상인데, 첫해에만 1조2,000억 원이 넘는 재정이 소요되는 사업이라는 게 국회입법조사 처의 분석이다.
하지만 임신·출산·육아의 기회비용을 OECD 최고 고학력인 한국 여성한테 현금으로 다 보전하는 것은 어지간한 예산 규모로 어림없는 일이다. 입체적 해법이 필요하고, 이미 다양한 대안이 제시돼 있기도 하다.
예컨대, 난임 시술 지원은 만혼·노산이 늘며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이가 많아진 현실에 비춰볼 때 출산 의지가 있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돕는 것이 없는 의지를 만들기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착상에서 비롯된 대책이다. 결혼을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2015년만 해도 30만 건을 넘던 혼인 건수는 지난해 19만여 건까지 줄었는데, 정부 분석 에 따르면 청년 구직·주거난이 핵심 배경이다. 이를 완화하는 실효적인 복지 방안을 고민하는 게 저출생 대응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가능한 선택지로는 ‘수혈’도 있다. 이민 수용이다. 이민자가 늘면 출생이 늘 뿐아니라 노동시장 수급 불균형이 줄어 얼마간 경제도 성장한다는 게 선진국 경험이다.
그러나 그럴 바에야 우선 한국 여성에게 투자하는 게 비교우위 대책이 될 수 있다. 관심이 미시적이든 거시적이든, 양적이든 질적이든 결과적으로 현재 한국 여성을 구속하고 있는 육아·가사의 굴레를 벗겨낼 필요가 있다는 것은 경제학·사회학·복지학·여성학 등 여러 전공 분야의 전문가가 공유하는 문제 의식이다.
■돈 몇 푼보다 육아 문화 개선을
일·양육 병행 여성을 위한 정책 제언은 △보조금 확대 △육아휴직 활성화 △근무시간 조정 △보육 기반 시설(인프라) 확충 등 경제적·제도적·물리적 수단을 아우른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녀를 안심하고 출산해 키울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완비하는 것을 저출산 대책의 제1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다만 저출생의 근본 원인이 유교사회 가부장 문화인 만큼, 육아가 여성만의 몫이라는 시대착오적 신념과 결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충고가 나온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머니 되기(출산)’와 ‘어머니 노릇(양육)’이 개인 여성에게 위험·부담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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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박경담·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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