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만수대창작사 최창호의 작업실, 그의 조선화 작품 앞에서. 2014년 10월 29일201x403cm, 개인 소장
조선의 심장인 평양에 만수대창작사가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미술창작기지다. 12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3분의 2가 건물로 차 있다. 김정일 시대의 최고의 미술 상징 기관이며 북한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의 창작 요람이다.
만수대창작사는 대략 13개의 창작 부서로 나눠져 있다. 조각, 조선화, 유화, 벽화, 판화, 수인화, 출판화(선전화), 조선보석화, 금니화, 민예, 공예, 도자기, 수예 등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뒷전으로 밀려난 손땀 수예가 북한에서는 주요 예술 분야로 당당하다.
만수대창작사는 약 4천 명의 인원이 매일 출퇴근하는 일종의 공무원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전체 인원 중 약 1천 명이 창작가들이고 3천 명이 보조 요원이다. 보조 요원의 수가 많은 이유는 창작사 안에는 탁아소, 취사실 뿐만 아니라 조각 보조실, 자료 공급실, 표구실 등 여러 부대 시설에 소속돼 일하는 직원이 많기 때문이다. 조선화 종이인 ‘참지’도 여기서 자체 생산하고 있다.
만수대창작사는 국가의 미술 전반을 책임지고 총괄하는 곳이다. 전국에 세워진 김일성, 김정일 동상 등 기념비 조각, 탑, 벽화 등을 총체적으로 제작하며 주요 건물의 실내장치까지 도맡고 있다.
만수대창작사는 사장이 있지만 타이틀일뿐 실질적 최고 통괄자는 부사장이 맡는다. 만수대창작사 부사장은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산하 부서인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직을 겸하고 있다. 현재의 부사장은 김성민(조선화가)이며 그는 북한의 거대한 미술계의 총사령관이다.
김성민은 1980년 <지난날의 용해공들>이란 조선화를 창작하여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을 수상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작가다. 실력이 뛰어나면 반드시 인정받는 평양의 미술계가 의외로 신선하다. 나는 그를 평양에서 여러 차례 만나 인터뷰 하였고 평양-북경의 고려항공기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만수대창작사는 뛰어난 조선화가들이 즐비하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 3학년 때 북한으로 넘어가 봉산탈춤 등 주로 민속적인 주제를 다루는 원로 김승희 화백, 집중적으로 금강산을 그리는 문정웅 화백, 호랑이의 기백를 절묘하게 뽑아 묘사하는 김철, 어릴 때부터 천재 화가로 이름난 오은별, 현대적 감각을 조선화에 접목시킨 김인석, 조선화의 최고 품격을 성취한 최창호 등이 내가 주로 인터뷰를 많이 한 조선화 작가들이다.
최창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림은 인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시적(詩的)이어야 한다.” 그의 이 한 문장이 북한 조선화의 핵심을 대변하고 있다. ‘인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에 사실적인 그림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다음 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림은 ‘시적이어야 한다’는 이 말은 북한의 체제와 연관지어 볼 때 괴리감이 느껴진다. 바로 이 점이다. 우리는 북한을 너무 모른다. 북한의 미술가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고뇌를 지니고, 어떻게 창작에 임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내가 현장 체험한 조선화의 세계를 알리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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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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