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뮤지컬 공연을 마치고 함께 했던 나(앞줄 오른쪽)와 연기자, 스탭들과 찍은 사진.
문득 꺼내든 빛바랜 사진에는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얼굴들이 있다. 오래 전, 독자들이 각종 행사나 모임 등에서 찍은 옛 사진을 앨범 속에서 꺼내 공유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독자들이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추억의 사진을 직접 골라 간단한 사연과 함께 본보에 보내주면 모든 한인들과 함께 추억을 나누고자 한다.
1998년 나의 가족은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도착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IMF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던 시기였다.
당시 와싱톤중앙장로교회(KCPC)는 지금의 버지니아 센터빌이 아니라 비엔나에 있었다. 우리 가족은 이 곳에 정착한 후 KCPC에 몸담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던 중 2000년 교회의 문화사역부에서 대형 뮤지컬을 기획한다는 소식에 난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처음으로 뮤지컬에 도전했다. 연기뿐만 아니라 스텝으로 모든 일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 버지니아 한인교계 최초로 무대에 올린 기독교 관련 대형 뮤지컬 ‘더 프라미스(The Promise)’는 예수님의 일대기를 담은 작품이었다.
연습기간은 20개월, 1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고, 80여 명의 배우와 스탭이 함께 한 작품으로 애난데일 노바 문화센터에서 두 번에 걸쳐 공연을 했다. 1,000명이 넘는 관객과 호흡하면서 신앙적으로 한 단계 성숙했던 공연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뮤지컬을 연습하던 시간들이 생각나고 무대에 올랐을 때의 그 설렘과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어느덧 20년이 흘러 당시 청년부였던 젊은 친구들은 결혼해 가정을 이뤄 살고, 초등학생이었던 내 아들은 성인이 돼 가정을 꾸린 것을 보면 새삼 세월의 흐름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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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화 <버지니아 페어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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